▣ 오피니언 칼럼
*제144회 - " 떠난 가족이 그리울 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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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살다 보면 나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가족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돌아가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득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거나 먼저 간 남편·아내·형제·아이가 갑자기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순간 말이다. 삶의 굴곡 속에서 힘들어할 때 불현듯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거나, 아이 엄마가 돼서 비로소 엄마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는 엄마 생각에 눈물이 고이는 순간. 먼저 간 내 가족이 좋아했을 만한 옷이나 책, 음식을 접했을 때 살아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사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다.
얼마 전,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20대 재미교포 지나 양이 아버지 실물 크기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명소 앞에서 아버지 사진을 세워 두고 함께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유롭게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할 틈 없이 열심히 일만 하다 뜻하지 않는 병을 얻어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억누르는 우울증으로 돌아왔고, 어느 날 돌연 본인이 다니던 뉴욕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어 아버지 사진과 함께 무작정 유럽으로 떠난 것이다. 아마도 지나 양에게 이번 여행은 비록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마음만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의미 있는 치유의 여행이 되었으리라.
음력 칠월 칠석이 다가오면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립다.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정성으로 기도하시는 할머니. 한 번은 도대체 무슨 기도를 올리시는 거냐고 여쭤 보니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가 어른이 되면 원하는 대로 깃발 날리면서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할머니의 기도는 할머니 후손들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살기를 발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처럼 칠월 칠석이 다가올 때면 절에서 자손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정성껏 기도하시는 노(老)보살님들의 모습 속에서 그 넉넉했던 친할머니의 봄볕 같은 사랑이 자꾸 생각난다.
종교인으로서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후 남겨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을 드리는 것 같다. 혹시라도 먼저 떠난 가족이 그리워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잇는다. 먼저 사랑하는 가족이 이 세상을 떠났다 해도 그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울 때 한 번 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천천히 살펴보면 내 안에서 순간순간 지금도 살아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성격을 닮아 어떤 상황에선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하는 내가 느껴질 때, 좋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봤을 때 어머니의 감수성을 그대로 닮아 어머니처럼 반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부모님이 내 안에서 살아계시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내 아이나 남편·아내·형제일 경우에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를 변화시켜 놓은 좋은 점들을 찾아보자. 그들의 존재로 인해 내가 더 성숙해지고 삶의 큰 가르침을 얻은 것들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그 변화들 속에서 그들의 존재가 아직 살아 있다.
또한 먼저 간 가족을 그리워만 할 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가슴 아프다는 분들이 있다. 이럴 때는 그들의 이름으로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의미를 두었던 일을 하는 단체에 적은 금액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를 한다거나, 아니면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해 보는 것이 좋다. 어떤 이들은 나무를 심기도 하고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그리운 가족과의 관계를 의미 있게 이어 나가면서도 내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한다는 것을 알면 사랑하는 그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독일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가 한 말을 떠올려 보자. “죽음을 통한 상실은 우리 가슴을 찢어 큰 구멍을 만들어 놓지만, 그 상처의 구멍이 있기 때문에 또한 은혜의 바람이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너무도 크지만 그 아픔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지금 같은 상태가 영원할 거라는 착각의 잠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하늘이 내린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중앙일보 2014.8.1.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