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75회 - " “당신은 참으로 부처님 같소” "

영광도서 0 679


“불교 모르던 고등학생 시절

봉축 오색연등 물결에 반해

출가 수행자로서 꿈 키워

대학에서 종교학 공부한 후

출가사문 첫 발을 내딛으며

불교와의 인연 더욱 깊어져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언행일치’…주어진 상황서

최선다해 노력하며 살고싶다”

고등학생 때 나는 불교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부처님오신날 만큼은 참 좋아했다.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는 아름다운 5월에 학교를 하루 쉴 수 있다는 점이 우선 좋았고, 고운 색깔의 연등들이 서울 종로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에 또 반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연등으로 물든 시내 거리를 걷고 있으면, 학교 성적에 대한 압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잠시 그 아름다운 불빛 속에서 잊을 수가 있었다. 특히 집에서 멀지 않는 북한산 도선사에 올라 오색 연등으로 휘감은 법당을 보면서, 워크맨에서 나오는 카팬터스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묘하게도 편안했다.

그 당시 나에겐 삶의 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미국 몰몬교 선교사들과 함께 농구나 탁구를 하면서 주말 오후를 보내는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20대 초반이라 나와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으면서, 영어와 함께 서양문화를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원래부터 궁극적 질문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선교사들과의 교류는 그러한 나의 종교적 관심을 더욱 크게 증폭시켰다. 특히 우리가 왜 태어났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든가, 아니면 세상 가득한 불공평에 대한 문제라든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 등에 대해 그들과 영어로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부처님오신날이 돌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선교사 친구들을 설득했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나라 전통종교도 좀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결국 그들을 설득하여 아름다운 연등 불빛이 잘 보일만한 늦은 오후 시간에 북한산 도선사를 향했다. 사실 그땐 나도 불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법당 앞에 서서 백인 선교사들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아는 것이 짧은 나로서는 대답이 어설펐다. 예를 들어 사천왕을 보더니 왜 불교는 악마를 숭배하느냐 하는 질문이나, 아니면 돌로 새긴 마애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돌에다 절을 하느냐, 저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답을 명쾌하게 못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불상이 부처님인 줄 알았다. 그래서 불상에 대고 절을 하면, 그 불상의 부처님이 우리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런 단순 무식한 나의 불타관이 대학에 들어가 종교학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몸이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법신, 보신, 화신의 모습으로 존재하셔서, 비로자나 부처님처럼 법신의 모습, 아미타 부처님처럼 보신의 모습, 아니면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화신의 모습으로 부처님들이 계신다고 배웠다. 하지만 법신인 비로자나 부처님조차도 절에 가면 눈과 코와 귀가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부처님이라고 하면 나와는 많이 다른 숭배의 대상이자 위대하고도 고귀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사미계를 받기 위해 2000년 봄 해인사에 들어가면서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그땐 IMF의 영향으로 스님이 되고자 하는 행자들이 지금과는 달리 아주 많았다. 제대로 발심된 사람들만으로 추린다는 생각이었는지, 행자 교육기간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쉽지 않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습의사 스님들도 다들 엄격하셨는데, 그중에 한 스님만이 다른 스님들과는 다르게 자비하게 행자들을 대하셨던 것 같다. 키가 아담하고 온화한 모습이셨는데, 백팔참회 기도를 다 같이 하기 직전에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도 부처님 가르침을 어느 정도 공부하셨으니까, 지금 뒤에 보이는 불상이 진짜 부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시지요?”

뒤에 보이는 불상이 진짜 부처는 아니다…. 화두처럼 툭 던진 그 스님의 말씀이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꽂혔다. 행자교육 기간 중에는 불상을 향해 계속해서 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욱 더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론으로는 법신 부처님은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는 우주에 충만한 무형상의 부처님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가르침이 내 마음에 크게 와 닿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사미계를 받고 학문적으로나마 선불교를 좀 더 깊게 공부하는 인연이 생기면서, 내가 평소에 이해했던 부처님에 대한 생각도 점점 성숙하게 되었다.

일반 경전과는 달리 선어록은 처음부터 아예 무형상의 근본 부처자리를 일깨워주기 위한 옛날 어른 스님들의 말씀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선어록 식으로 묻자면 돌부처가 성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돌부처가 원래부터 성스럽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 마음이 성스럽다고 보기 때문인가?

왜냐면 똑같은 돌부처를 봐도 어떤 이는 성스럽다고 느낄 수 있지만 선교사 같은 이들은 전혀 그런 느낌이 올라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스러움은 부처의 형상을 한 돌에 있는가, 아니면 성스러움을 아는 내 마음에 있는가?

이런 식으로 외부의 대상으로 마음의 관심이 자꾸 흘러가는 것을 역으로 돌려서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을 보려고 했다. 학문이 점차 익어갈 무렵, 짧게나마 지금까지 배운 것을 몸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간화선 수행 프로그램이었다.

수불스님과는, 내 출가 사찰인 뉴욕 불광선원의 불사가 한창 어려울 때 상당히 큰 보시를 아무런 조건 없이 해주신 것으로 인연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스님의 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평소에 선어록에서만 보던 의정, 율극봉, 금강권, 타성일편과 같은 것들을 하나씩 경험하고 밑동이 빠지면서 모든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그 자리를 굳이 말로 표현 하자면 텅 비어 있는데 참으로 묘하게도 텅 빈 것이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 있다. 살아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또 그 속에서 모양이나 소리나 생각이 나왔다가 다시 텅 빔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모양이나 소리나 생각도 텅 빔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것들은 둘이 아니고 결국은 하나였다. 달리 말하면, 세상으로 나툰 모든 형상은 오직 하나의 텅 빈 마음바탕에서 벌어지는 묘용이다. 예전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 몸 안에 갇혀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안과 밖이 툭 트여 전체가 마음 한통속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또 큰 가르침의 기회가 있었는데, 진제 종정예하께서 뉴욕에 오셨을 때 옆에서 일주일간 시봉을 하면서 통역을 하게 되었다. 종정예하를 평소에 흠모해왔던 터라,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배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미국 여학생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여학생은 물었다. “스님,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말씀하셨다. “우리 주인공은 본래 태어난 적이 없다!”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죽을 일도 없고, 이미 구족해 있기 때문에 노력해서 더 얻어야 할 것도 빼앗길 일도 없는 그 자리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셨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있은 후 나의 신상에도 뜻하지 않는 변화가 생겼다. 많은 스님들이 하시듯 나도 어쩌다 책을 내게 되었는데, 그 책이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부족한 점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다.

더구나 수행의 물이 완전히 익지 않아 어설프고 배워야할 점들도 천지인 상황에서, 멘토라고 사람들이 불러주니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봉암사를 찾았다. 평생 공부만을 하신 훌륭한 선방 스님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또한 수좌 적명스님께 공부상의 의문이 생기면 여쭈어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적명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초지에만 들어도 지혜가 구족됩니다. 하지만 십지까지 더 가야하는 이유는 아는 것과 평상시 행동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옛날과는 달리 지금 시대에서는 부처 소리를 들으려면 본래 성품을 깨친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일반 저자거리 사람들이 ‘당신은 참으로 부처 같소’라고 이야기해 줄 때, 비로소 그들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고, 또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건대 그 둘의 간격이 너무도 벌어져 있어서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살고 싶다.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래도 간격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 종로 거리에 걸린 오색 연등의 불빛은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답다.


[불교신문3108호/2015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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