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87회 - " 본래 따로 없다! "

영광도서 0 425
# “늙은 거야. 아무리 속이고, 허세를 부리고, 멍청한 척해도 인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거야. 70년이 휭 하고 지나가 버린 거라고! 되돌리지 못해.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밑바닥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거야. 찌꺼기만 남은 거지. … 네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이제 시체 역을 연습해야 할 때가 된 거야.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냐.”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 중에서 늙은 배우 스베틀로비도프가 공연이 끝난 후 술을 퍼마시고 분장실에서 쓰러져 잠들다 깨어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내뱉듯 던진 대사의 한 대목이다. 극중에서 늙은 남자배우로 분한 배우 박정자가 특유의 음색(音色)으로 대사를 읊을 때 그것은 그 자신의 속에서 우러난 독백에 다름 아닌 듯싶었다.

 # 지난 주말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동빙고동의 ‘프로젝트박스 시야’라는 낯선 공연장을 찾아갔던 그날은 ‘14인(人, in) 체홉’이란 타이틀로 체호프의 단막극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공연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연극은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 곧 ‘막공’이 같은 듯하지만 사실은 사뭇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첫 공연은 어딘가 모르게 빠진 데가 있기 마련이다. 배우들도 자신을 완전히 그 배역에 빙의(憑依)가 된 듯 몰입시키지 못한 채 공연의 막을 올리기 십상이지 않던가. 하지만 막공엔 다르다. 단지 반복된 공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배역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삼투시켜 대사가 겉돌지 않고 자기 속에서 배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막공 보는 맛은 사뭇 다르다. 더구나 삶이 연극 그 자체인 배우 박정자가 열연해서였을까? 그녀는 이미 스베틀로비도프였고 “난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아…”라는 대사를 말할 때는 그녀 자신의 삶이 웅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정말이지 연극과 인생에 경계가 따로 없었다.

 # 광주광역시에 있는 무각사는 문화예술적 향취가 있는 사찰로 이름이 나 있다. 초급장교를 훈련시키던 옛 상무대가 옮겨간 후 그곳에 들어선 5·18 기념공원 내에 자리한 도심사찰인 무각사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몇 해 전인가 박노해 시인이 자신의 사진전을 그곳에서 연다고 알려준 덕분이었다. ‘무각사(無覺寺)’라… 그 의미는 “깨달음이 없다”는 뜻이기보다는 오히려 “깨달았다는 생각마저 없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는가.

 # 무각사 내 로터스갤러리에서 나주 죽설헌 주인 박태후 화백의 딸 ‘설 박’이 개인전을 갖는다 해서 지난 수요일 늦은 오후에 찾아갔다. 한창 작품감상에 빠져 있던 내게 박 화백이 스님 한 분을 모시고 나타났다. 무각사 주지 청학스님이셨다. 동자승을 닮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주름살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마치 조개껍데기 사이로 보이는 조개 속살 같은 스님의 작은 눈이 내 두 눈과 마주치자 오래전에 만난 인연처럼 느껴져 그 인연을 화제로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다 법정스님 이야기가 나왔다. 청학스님이 길상사 초대 주지로 있다가 홀연 떠난 뒤 다시 법정스님을 해후한 것은 그가 열반에 들기 며칠 전이었다. 당시 청학스님은 세상을 만행(萬行)하다 송광사 말사인 무각사에 다시 둥지를 틀고 2000일 기도정진 중이라 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오전 기도를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법정스님으로부터 마지막 법어 같은 한마디를 듣고 돌아왔다. “생과 사는 본래 없다!”고.

 # 그렇다. 살고 죽는 것은 경계조차 없다. 비행기 탈 때 그것이 떨어지리라고 생각하고 타겠는가? 어차피 연극 같은 인생이지만 첫공도 막공도 따로 없다. 게다가 깨달음조차 본래 따로 없다.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물음이 꼬리를 물기 마련이니 아예 깨달음에 대한 집착마저 없어야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무각(無覺)이 대각(大覺)이요 대각이 무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은 본래 따로 없다. 우리가 애써 경계를 나눌 뿐! 그렇게 무각사의 여름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중앙일보 2013.7.13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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