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34회 - " 트라이앵글 사건 "

영광도서 0 558

백 년 전만 해도 미국은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사람이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광산이 무너지거나 배가 뒤집히거나 기차가 충돌하거나 공장이 불타는 사고가 아주 흔한 일상처럼 벌어졌다고 한다. 미국 경제는 19세기 후반부터 철강과 철도산업을 선두로 기계를 이용하는 제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영국이나 독일 경제를 능가하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 덕분에 값싼 노동력이 풍부했으며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사업가들은 미국 북동부 지역에 많은 공장을 짓고 그 노동력을 활용했다. 하루에 평균 백 명씩 죽어나가는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안전, 근로환경 등에 관심을 가지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11년 3월 25일, 뉴욕 맨해튼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고가 사람들의 생각을 대대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라는 대형 봉제 공장에서 난 큰 불이었다. 이 불은 여타 다른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와는 다르게 미국 사람들 안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사망한 희생자의 수가 146명으로 엄청났고, 대부분의 피해자가 10대와 20대의 꿈 많은 어린 여공들이었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주된 원인이 계단으로 연결되는 비상구의 문을 공장 측에서 열쇠로 잠가놓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공장 측 간부는 불이 나자 나 몰라라 먼저 도망을 갔다.

 안타깝게도 소방차가 뿜어내는 물줄기는 불이 난 9층까지는 닿지 못했다. 잠겨 있던 비상구 문을 필사적으로 두들기고 또 두들기다가 여공들은 연기에 질식하거나 불에 타 숨졌다. 또 어떤 이들은 9층 창문을 통해 거리로 뛰어내렸다. 길에 떨어진 그 여공들의 참담한 시신은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한가운데를 피로 물들이면서 외면하려야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크나큰 사건이 되었다. 불탄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이 신문을 통해 전해졌고, 시민들의 분노는 인명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상구 문을 밖에서 잠가놓은 봉제 공장 사주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젊은 날에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뉴욕 시민들의 검은 옷의 물결은 맨해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사고는 그동안 관행처럼 무시해왔던 안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통째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먼저 일반 시민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각종 노동단체들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머리를 모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공안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위원회를 중심으로 안전에 관한 새로운 규제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화재가 발생한 후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총 64가지 법안이 만들어져 그 가운데 60가지가 뉴욕주에서 통과되었다. 새로운 규제 조항 가운데에는 근무 시간 동안 비상구 문을 잠그는 것을 금지하고, 소화전과 화재경보기·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건물 자체에 방화시설을 갖춰야 하며, 만약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을 시 화재 예방 훈련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식당과 화장실의 시설을 현대화하도록 했으며, 여성과 아이들의 공장 내 근무 시간을 줄이는 규정을 만들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놀랍게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많은 미국인의 뇌리에 아직도 박혀 있다. 2008년에 그 화재를 추모하는 동맹 단체를 조직했는데 무려 2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고, 2011년 3월 25일에는 화재가 시작되었던 오후 4시45분에 미국 전역의 많은 교회와 학교, 소방서에서 추모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음악이 아직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를 담아내고 있으며, 미술가들은 희생자들이 백 년 전에 살았던 집 문 앞으로 가서 그들의 이름을 적고 꽃이나 삼각형의 트라이앵글 모양을 그려서 그들을 해마다 추모한다.

 백 년 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났다. 이번 사고는 그동안 안전보다는 성장을 더 중시해온 배금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번 다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이 땅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의 분노와 슬픔, 비난과 책임 추궁을 넘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월이 지나 망각의 바다로 그들을 보내기엔 이번 상처가 너무도 크고 깊다.


[중앙일보 2013.5.9 마음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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