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36회 - " 5월이 가기 전에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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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서른 살의 가을, 아들은 신혼여행 중이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영국으로 귀국할 준비를 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황급히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낸 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묻지 못한 질문을 하나씩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10대 후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는 아들에게 주방 창가에서 손을 흔들어 주던 아버지, 그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나요.
미국 작가 빈센트 스태니포스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Questions for My Father)』은 질문만으로 이뤄진 책이다. “맨 처음 나를 품에 안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내게 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셨어요?”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은 뭐죠?”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질문 하나를 적을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 나눴던 대화를 더듬었다. 아버지라면 어떤 답을 들려줬을까 상상하며. 서른 해 동안 최고의 사랑을 건네준 이에게 띄우는, 답장을 기대할 수 없는 편지였다.
5월이 지나가고 있다. 답장 없는 편지들이 서럽게 나부낀 봄이었다. 너무 일찍 떠난 아이에게 가족들은 “미안하다. 네가 있어 행복했다”고 적었다. 서울시청 앞에는 나무마다 기둥마다 노란 리본이 흩날린다. “기억하겠다”는,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적은 편지들이다. 대답 없는 질문, 답장 없는 편지지만 허망하지만은 않다. 그 고백과 다짐이 살아남은 이들을 구원할 것이므로. “사랑한 이가 떠나버린 후에라도 그에게 편지를 써라.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말하라. 만일 무덤 앞에 있었다면 했을 말들을 편지로 옮기라. (…) 그 편지들이 결국엔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상실수업』)
그러니 이달이 가기 전, 소중한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네보면 어떨까. 당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혹시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일은 없었나요 라고. 언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말, 그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말이란 걸 이제 우리는 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편지를 쓰기 시작한 아들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문제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볼 일이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2014.5.27 중앙일보 분수대 -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미국 작가 빈센트 스태니포스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Questions for My Father)』은 질문만으로 이뤄진 책이다. “맨 처음 나를 품에 안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내게 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셨어요?”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은 뭐죠?”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질문 하나를 적을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 나눴던 대화를 더듬었다. 아버지라면 어떤 답을 들려줬을까 상상하며. 서른 해 동안 최고의 사랑을 건네준 이에게 띄우는, 답장을 기대할 수 없는 편지였다.
5월이 지나가고 있다. 답장 없는 편지들이 서럽게 나부낀 봄이었다. 너무 일찍 떠난 아이에게 가족들은 “미안하다. 네가 있어 행복했다”고 적었다. 서울시청 앞에는 나무마다 기둥마다 노란 리본이 흩날린다. “기억하겠다”는,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적은 편지들이다. 대답 없는 질문, 답장 없는 편지지만 허망하지만은 않다. 그 고백과 다짐이 살아남은 이들을 구원할 것이므로. “사랑한 이가 떠나버린 후에라도 그에게 편지를 써라.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말하라. 만일 무덤 앞에 있었다면 했을 말들을 편지로 옮기라. (…) 그 편지들이 결국엔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상실수업』)
그러니 이달이 가기 전, 소중한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네보면 어떨까. 당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혹시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일은 없었나요 라고. 언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말, 그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말이란 걸 이제 우리는 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편지를 쓰기 시작한 아들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문제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볼 일이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2014.5.27 중앙일보 분수대 -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