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39회 - " 책 이사를 하고서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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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남들보다 책을 좀 많이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거 말고는 남다를 게 없지만, 간혹 그게 도드라질 때가 있다. 이사할 때다.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게 책짐이 많은 이사인데, 그건 책이 부피에 비해 무겁기 때문이다. 한 직원의 말로는 수석 이사 다음으로 힘든 게 책 이사다. 돌덩이를 옮기는 것 다음으로 힘든 일이 책짐을 나르는 일이라는 얘기다.
물론 나도 경험이 없지 않아서 대학원 시절 자취방을 옮길 때 친구의 힘을 빌려 100개가 넘는 라면박스를 나른 적이 있다. 라면 대신에 책이 들어간 라면박스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건물의 3층까지 계단으로 박스를 나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힘들었던 이사다. 그 이후로는 노력 동원 수준을 넘어섰기에 주로 용달 아저씨나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사를 위해 미리 업체의 견적을 받을 때도 책 이사 경험이 많은지가 가장 중요한 확인사항이었다. 대학 연구실이나 도서관 이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가산점이 주어진다.
지난 주말에 바로 그런 이사를 또 했다. 예전 집에 이사한 지 4년 만에 전셋집을 비워주게 되었는데, 더 이상의 책이사가 부담스러워 아예 내 집을 마련했다. 보통 신중할 수밖에 없는 내집 마련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준 것이 책인 셈이다. 형편에 맞게 몇 년 전세를 더 살다가 다시 이사를 하는 것이 결코 대안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책이 불어난 탓인데, 짐작엔 1만5000권에서 2만 권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적정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만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을 경우 충분히 장서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이미 한 장소에 보관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나 같은 경우도 서너 곳에 책을 분산 보관하고 있는데, 이번에 집으로 옮긴 게 대략 전체의 3분의 1 정도다. 이사하기 전에 책장을 충분히 짜놓아서 아직 빈 공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게 이사한 보람이다.
하지만 보람은 잠시다. 일단 마구잡이로 꽂혀진 책들을 마땅한 자리를 정해서 제대로 정돈하는 게 이사보다 더 큰 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건 따로 용역을 줄 수도 없는, 순전히 서재 주인의 몫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가끔씩 애는 써보았지만 결국 4년 동안 온전한 책정리는 끝내지 못했었다. 두 가지 핑계를 대곤 했는데, 인생이 미완성이듯이 책장 정리도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이유가 하나였고, 군대식으로 잘 정렬된 책장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뒤섞인 서가에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실용적’ 이유가 다른 하나였다.
책들의 위치를 다 기억하고 있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필요한 책을 제때 찾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니 실용적이란 말은 어폐가 있다. 그래도 마구잡이 배열이 뭔가 시적이라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눈앞의 책장 한 칸을 보니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와 『구텐베르크 은하계』 『나의 햄릿 강의』 『돈을 다시 생각한다』 『영화장르』 『번역이론』 『트랙스크리틱』 등이 두서 없이 꽂혀 있다. 또 다른 칸에는 『문학의 공간』과 『칼 세이건』 『냉전의 역사』 『그레이트 게임』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니체 극장』이 한 편이 돼 있다. 머지않아 자기 자리를 찾게 할 계획이지만 당분간은 이런 무질서도 즐기고 싶다. 장서가의 즐거움이란 게 사실 대단찮다.
‘삶의 향기’란 칼럼을 청탁받으면서 주로 딱딱한 책 얘기나 하게 될 거라며 완곡하게 사양했지만 첫 지면에 ‘무거운 책’ 얘기만 적게 됐다. 무거운 책들과 함께하는 삶은 향기로운 삶이라기보다는 단내 나는 삶이다. 그럼에도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 말에 인생을 걸었으니 도박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과 일상의 감각을 보존하고 환기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매체로서 책 이상의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라는 질문을 이사할 때마다 받으면서도 “다 읽을 수는 없지요”라고 멋쩍게 답하면서 여전히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이유다.
[2014.7.1 중앙일보 삶의 향기 - 이현우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