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66회 - "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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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8
나는 분명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 진즉에 말씀드렸듯이 병원에 가시지 왜 계속 미루기만 하셨어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아버지에게 말하는 내가 싫었다. 상황은 이랬다. 작년 봉암사 가을 안거 수행을 마치고 잠시 속가 부모님 댁에 들렀을 때 평소보다 많이 여윈 아버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살이 빠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쭈어보니 아무런 이유가 없으시단다.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종종 드신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혹시 위암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불현듯 들었다. 위암 초기증상이 살이 빠지는 거라던데…. 그리고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지난가을 위내시경 검사를 끝끝내 하지 않으셨다. 자기 몸은 괜찮으니 혜민 스님 몸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다. 당신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아들인 혜민 스님은 앞으로 세상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니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그리고 살갗을 에는 추운 겨울이 돌아와 다시 뵙게 된 속가 아버지는 감기와 비염으로 한 달 넘게 고생 중이셨다. 이번에는 아버지도 당신의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느끼셨는지 먼저 위내시경 검사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가슴이 철렁하면서 아버지께 화가 났다. 왜 자신의 몸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시는지. 왜 자기 스스로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꾸 말씀하시는지 속상했다.
이런 감정은 비단 내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여러 사람과 오랜 시간 상담을 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아들에겐 어머니와의 관계와는 달리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 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유형을 나눠 설명하자면 대략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에게 애정 표현이 잘 없으면서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거나 화를 잘 냈던 경우다. 이런 경우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감히 넘지 못하는 두려운 산 같은 존재가 된다. 어린 시절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그림자에 줄곧 압도당했던 자녀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하고 할 말이 없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특별한 경제활동이 없거나 외도를 해서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경우다. 살면서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상처로 마음이 얼룩져 있다. 눌러놓은 감정들을 제대로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경우에는 성년이 되어서 힘들어 한다.
세 번째는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경우, 그리고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을 때다. 웬만큼 공부를 잘해서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고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늘 불안하고 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잘하고 성취했을 때만 사랑받을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학벌과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존감이 낮은 젊은이들을 만나는데, 이들과 대화해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네 번째는 반대로, 아들이 매우 뛰어나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경우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 보통 아들은 아버지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간섭을 싫어한다. 마지막 유형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은 경우다. 이 경우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면서 마음 한구석은 왠지 허전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는 좋은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왜 자꾸 자신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시는지, 그래서 당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시는지 이해해보고 싶었다. 상담할 때 상대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듯 아버지를 깊이 들여다보니, 내 할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관심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한 소년이 보였다. 둘째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가 큰아들만 데리고 먼저 피란을 떠났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옛 어른들이 그렇듯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분이셨다. 아버지와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그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검사가 끝난 후 아버지는 전화를 주셨다. 내시경 결과가 다행히 위암이 아니라는 소식을 전하며 갑자기 “우리 아들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로부터의 말이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 사랑해요. 그리고 저를 자존감 높은 아들로 키워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