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회 - " 문학이란… 가공(可恐)할 만한 가공(加工)의 스킬이다 "

영광도서 0 558
명함을 건네면 따라나오는 질문. 문예창작학과? 재미있겠다, 뭘 가르쳐요? 상대에 따라 준비한 답은 네 개다. 하나,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를 가르칩니다(가르쳐 본 적 없다. 어르신이거나 진지한 상대일 때 쓴다). 둘, 예술은 사기라는 걸 가르치죠(말을 섞기 싫은 상대와 대화를 차단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셋, 가르친다기보다는 재능이 없는 학생을 찾아내서 문학을 포기하도록 설득합니다(이런 식의 후벼 파는 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넷, 가공의 스킬을 가르칩니다(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상대에게 쓰며 꼭, 항상, 반드시 여성인 것은 아니다). 과연 네 번째 답을 하면 오, 가공~ 하며 역시 뭔가가 있을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 가공(可恐)이 아니라 이 가공(加工)이다.

실은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가공업자다. 눈이 좋은 작가에게 세상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굴러다니는 보화밭이다.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전달하는 사람을 '일반인'이라고 한다. 어려운 얘기를 더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것, 이게 바로 가공업의 정의이고 스킬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은? 갑자기 가슴이 마구 답답해지네.

스킬은 이를테면 도구 사용법이다. 앞에 닭 한 마리가 있다고 치자. 칼 한 자루면 끝난다. 소로 바꿔보자. 망치가 추가된다. 요새 유행하는 고래는 어떨까. 흰수염 고래는 100t을 넘어간다. 그래서 고래는 해체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때부터는 작업이 아니라 공사의 수준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다양한 장비를 동원해서 다채롭게 발라내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중도(中刀) 한 자루로 집요하게 파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세계만방에 외칠 수 있다. "나는 가공업자다~~"

가공업의 좋은 점은 많은 공부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전문가들이 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면 되니 효율적이다. 대신 다양한 방면으로 골고루 읽어야 한다. 고래를 해체하는 두 가지 중 첫 번째 방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특히 필수다(철학적인 인물을 통계학으로 재구성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시장 상황도 아주 좋다. 아직 우리 사회가 덜 깨인 덕분에 '두뇌'들은 법률, 의료 서비스 시장으로 간다. '머리'급들은 투덜거리면서 대기업으로 간다. 그 아래 급들만 남아 이 시장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다(물론 다는 아니다). 진짜 블루 오션이다. 그런데 명칭이 좀 걸린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을 때 가공업자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인다. 다행히 명지대 김정운 선생이 힌트를 준다. '21세기 지식이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널려 있는 정보를 새롭게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편집(edit)과 학문(ology)을 섞은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신조어를 알려주신다(술 한잔 빚졌습니다). 영어 명함에는 에디톨로지스트라고 한번 써 봐야겠다.

"신성한 문학을 가공이니 스킬이니 하며 시정잡배들의 잔기술처럼 추락시켜도 되는 겁니까" 따지는 분 있으리라. 그런데 문학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하는 거다. 밥에 관한 처절한 에세이인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라. 제목만으로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오지 않는가. 그리고 매일매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 식구들 먹여 살리는 밥벌이로서의 문학을 고민하지 않는 인간 중에서 글 잘 쓰는 인간을 아직 보지 못했다.



조선일보[2012.03.10. 남정욱 교수의 명랑소설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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