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8회 - " 교육산업만 있고 교육은 없다? 아니, 참스승이 훨씬 다수다 "

영광도서 0 536
오늘은 스승의 날. 매년 이즈음 옛 스승을 모시고 동창회 모임을 갖는 제자가 많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학교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열었다. 한 참석자가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 머리가 벗어져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는 친구를 발견했다. “야. 반갑다. 근데 너 꽤 늙어 보인다. 고생 많이 했냐?” 친구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야. 나, 네 담임이다.” 인터넷에서 본 유머다.

 하긴 그렇다. 나는 20대 시절 고교 국어교사를 잠깐 했다. 담임을 맡았던 반 제자들이 벌써 40대 중반이니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기간도 짧거니와 학생들에게 무엇 하나 베풀어 준 게 없는 나의 교사 생활은 부끄러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자라면서 크고 작은 은혜를 입은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첫 추억은 동화작가 임교순(74) 선생님.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동요 ‘방울꽃’의 작사를 한 분이다.

 초등학교 2학년생에게 선생님은 어렵기만 한 어른이었지만 지금 따져보니 임 선생님도 28세의 한창 젊은 나이였다. 학교 근처 단칸방에서 부인·갓난아기와 지내셨다. 어느 날 어린 제자를 따로 부르시더니 지시를 내렸다. “오늘부터 학교 파하면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글짓기 공부를 하거라.”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그 후 여쭤본 적이 없다. 오래도록 못 뵌 탓이기도 하지만, 모처럼 초등학교 동기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동창회를 연 자리에서도 망설이다 질문을 삼켰다. 일기를 쓰고 검사받던 시절이니 일기장이 좀 눈에 띄었나 추측했을 뿐이다. 어쨌든 1년 가까이 매일 댁에 찾아가 줄글이나 동시를 쓴 뒤 평가받는 과정이 계속됐다. 덕분에 평일 저녁밥은 거의 선생님 댁에서 얻어먹었다.

 일종의 고급 개인과외를 받은 셈인데, 선생님은 처음부터 사례비 얘기는 꺼내지도 않으셨다. 내 어머니가 형편 안 되는 것을 미안해하며 인사치레를 하면 “그런 생각 꿈에도 하지 마시라”고 하셨다. 경시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니 그게 보람이라 하셨다. 어제 나는 임교순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 처음으로 여쭈어 보았다. 46년 전 어린애를 왜 집에 부를 생각을 하셨는지. 선생님은 낱낱이 기억하고 계셨다. “나도 그때 신춘문예를 목표로 한창 글을 쓰고 있었다. 네 행동이나 글을 유심히 보면서 이 학생은 문학적 정서를 키워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졌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교육현장에는 임 선생님 같은 분이 절대다수라고 생각한다. ‘교육산업은 있지만 교육이 없고, 종교산업은 있지만 종교가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쌀에 섞인 뉘가 유독 눈에 띄어 그렇지 참교육자·참종교인이 훨씬 많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굳게 믿고 싶다.



중앙일보[2012.05.15.분수대-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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