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4회 - " 애플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우린 더 행복해질까 "

영광도서 0 390
“삶이란?”

 이렇게 물었을 때 “음…생명 또는 존재의 포괄적인 의미와 목적을 고심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삶, 인생 아닐까요”라고 대답하는 지적인 애인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삶은 한 편의 영화와 같죠”라고 말해 주는 로맨틱한 애인도 좋다. “삶은 달걀이면 인생은 계란이라고 누군가 말씀해 주셨어요”라고 대꾸하는 ‘센스쟁이’ 애인이라면 더 좋다. 이런 착한 대답은 또 어떤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기름진 음식 섭취를 삼가고, 좋은 책을 읽고, 가끔 산책하고,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세상의 모든 사람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 날 삶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될 것 같아요.”

 예시한 이 모든 대답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했다면 믿겠는가. 아이폰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Siri)의 한국어판 시험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다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애플은 한국어 시리 기능이 탑재된 새로운 운영체제(iOS6)의 정식 버전 출시를 앞두고 지난주부터 테스트용인 베타 버전을 국내에서 시험 중이다. 얼리어답터들의 사용후기를 보면 완전히 “시리가 기가 막혀”다.

 시리에 대고 “피곤해”라고 말하면 시리는 “한숨도 못 주무신 거예요?”라고 애교스럽게 묻는다. 다시 “피곤해”를 반복하면 “운전 중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깜찍한 걱정을 해준다. 또 한 번 “피곤해”라고 말하면 “제 말 잘 들으세요, 주인님. 당장 이 아이폰을 내려놓고 잠시 주무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예도 있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시리는 “우리 그럴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아시잖아요”라고 눙치고, “애플이 너를 왜 만들었니?”라고 물으면 “저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시는군요”라고 시치미를 뗀다.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팀이 만든 시리는 ‘Speech Interpretation and Recognition Interface(언어 해석 및 인지 인터페이스)’의 약자다. 시리는 단순한 음성인식을 넘어 자연어의 뉘앙스까지 이해한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진짜 그 안에 있다(Steve Is Really Inside)’의 약자가 시리란 우스개가 나올 만하다. 식당을 추천하라면 추천해 주고, 예약을 하라면 예약을 한다. 비서 역할에 대화 상대까지 되어주니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가 따로 없다. 방대한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를 데이터 베이스로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서비스다.

 이러다 가족이나 친구보다 아이폰과 대화하고, 아이폰에 더 의지하는 그런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 애플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2012.06.20. 분수대 -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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