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6회 - " 수재들을 교단에 모셔놓고 사방에서 눈치 주니 능력 발휘할 수 있겠나 "

영광도서 0 443
197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국사 선생님은 교직에 불만이 많았다. 경제적 고도성장기여서 아마도 기업체에 입사한, 학창 시절엔 당신보다 공부를 못했을 친구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데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은 짐작한다. 가르침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경인선 철도 개통 연도(1900년)다. ‘1900’을 굳이 ‘아이구 공무(0無)원’으로 외우라시는 것이었다.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도 자주 하셨다. 코흘리개를 갓 면한 까까머리들 앞에서 신세 한탄하던 모습에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요즘은 정반대다. 교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교대·사범대는 웬만한 성적으론 넘보기 힘들다. 눈을 밖으로 돌려도 우리가 낫다. 미국 시카고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며칠 전 교원평가와 수업시간 연장에 반대해 파업에 돌입했다. 시카고 가구당 평균 수입(연 4만7000달러)보다 훨씬 높은 연봉(7만6000달러)을 받는데 웬 파업이냐는 싸늘한 눈길도 많다.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교사 평가에 손실혐오(loss aversion) 이론을 적용하자고 제안해 교사들의 부아를 돋웠다. 손실혐오는 같은 돈·물건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갖고 있지 않은 것보다 더 중시하며, 잃어버렸을 때 더 애석해한다는 이론이다. 학자들은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미리 주고 학생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도로 회수하자고 건의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3년 전 교원임용고시 응시 자격을 석사 학위 이상으로 높였다가 지원자가 줄어 고심 중이고, 독일·벨기에도 교직 인기 하락으로 애를 먹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759개 직업 중 교육 관련 직업 5개가 만족도 상위 20위 안에 든다. 초등학교 교장이 1위, 대학교수 7위, 초등학교 교사 16위로 의사·변호사보다 높다. 안정성과 시간적 여유 덕분일 것이다. 연봉도 15년 경력 교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걱정인 것은 우리 교사들의 자기효능감이 OECD 최하위라는 점이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학생들을 성공적으로 지도해 변화시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교직이 천직인 시대가 지났다 해도 어려운 입시·임용고시를 통과한 수재들이 이렇게까지 자부심을 잃어버린 데는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다. 교육의 정치화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를 둘러싼 소동을 보더라도 일선 교사의 목소리는 교과부와 몇몇 교육감, 전교조의 고함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교육청 공문과 학생·학부모의 눈총에 시달려 도대체 재량권을 발휘할 공간이 없다. 그저 몸조심이 최고라고 여기니 자연히 보람도 엷어지는 것 아닐까. 아무리 봐도 고급 두뇌들을 교직에 모셔 놓고 너무 능력을 썩히는 듯해 안타깝다.



중앙일보[2012.9.14. 분수대 - 노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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