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54회 - " 고졸 남궁연이 ‘i폰5’ 광고에 낙점된 이유는 "

영광도서 0 418


“물리의 법칙은 그냥 참고만 해야겠네요.”

 TV에서 ‘i폰5’ 광고를 수십 번이나 보면서도 무심히 스쳐 듣다 어느 순간 ‘어! 저 목소리, 귀에 익은데…’ 했다. 더 들어볼 것도 없이 재즈뮤지션 남궁연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광고로 돈 벌었다며 한턱 내겠단다. 광고 내용이 지적(知的)이더라고 했더니, 그는 “지적인 광고에 고졸자인 나를 내레이터로 쓴 게 재미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어떻게 광고를 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광고회사에서 광고 찍자고 전화가 왔더란다. 본인도 어리둥절했단다. 그래서 내친김에 광고를 만든 담당자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왜 남궁연이냐고. 그는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목소리를 찾다가 ‘남궁연’을 낙점했다고 말했다. 튀지 않으면서도 호기심을 주고,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지적 신뢰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조건이 복잡했다. 그러더니 지금 30대라는 그는 덧붙였다.

 “10년 전쯤 라디오와 인터넷으로 전파됐던 남궁연씨의 ‘20대에게 주는 메시지’를 기억해요. 당시 우리에게 그는 멘토였죠. 지금도 수만 명의 젊은이가 트위터로 연결돼 있고…. 그는 학력과 학벌이 지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줬어요.”

 ‘예수님도 고향에선 인정받지 못했다더니…’. 사실 남궁연은 말썽쟁이였다. 공부 안 하기가 더 어려운 학자 집안에서 대학은 안 가고 드럼 치러 다니고, 그러다 미성년자가 술집에 드나든다며 아버지가 고발하는 바람에 소년원까지 구경했다는 골칫거리 아들이었다.

 물론 그의 창의력이 예사롭지 않은 건 인정한다. 그가 공연 구경 오라고 해서 가보면 늘 상상치 못한 일을 벌인다. 트위터 등장 당시, 오직 트위터만으로 공연 기획·광고에 스폰서까지 구해 오프라인 공연을 하는가 하면, 국제회의 만찬에 디지털 아리랑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또 자동차·디지털·영화·음악 등에선 해당 분야 전문가보다 더 해박하다. 자동차 종류별 기계적 특징부터 물 두 바가지로 세차하는 법까지 그에게 물어보면 답이 다 나온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그가 말했다. “창의성은 자신감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건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더라. 지켜야 할 학연과 지연이 없으니 상식에서 벗어나는 데 자유롭고, 이 때문에 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그의 말끝에 든 생각은 ‘우리 사회 창의성 지수를 높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여전히 인물평 제일 앞엔 어느 학교 출신인지부터 나오고, 새 정부 인사들 중 서울대와 성균관대 출신이 몇 명인지 누가 위스콘신대를 나왔는지 등 출신 학교별로 숫자 세고 계보 파악하고 있는 게 세상 인심이니 말이다.

[중앙일보 2013.2.27 분수대 - 양선희 논설위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