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62회 - " 책은 커피가 아니다 "

영광도서 0 389
자기 책 사야 학점 준다는 교수, 등록금도 벅찬데 책 강매까지…, 대학 다니기 정말 힘드네.’

 최근 모 유력 일간지 1면 하단에 실린 아포리즘이다. 그리고 같은 신문 사회면에는 <‘내 책 산 영수증 내야 학점 준다’는 황당한 교수>라는 제목 아래, 지면의 반을 그 사건(?)에 할애하고 있다. 특종이라도 잡은 기분이었나 보다.

 실명과 함께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고, ‘과제물을 제출할 때 그 뒷면에 책을 구입한 영수증을 붙이라’는 강의 계획서 내용까지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난 일색의 학생들 인터뷰 내용으로 기사가 채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마 교수는 꼼짝없이 책을 강매해서 돈을 버는 장사꾼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보아도 지나친 마녀사냥이다.

 조금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문제가 된 두 과목은 모두 교양수업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들에 속한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택해서 듣는 수업이다. 수업까지 강매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싫으면 수강신청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강의를 들을 필요성이 있어서 수강신청을 하는 순간 교수가 교재로 정한 책을 읽는 것은 학생의 의무가 된다.

 모두 알고 있고 인정하는 현상이지만 학생들은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 빌려 보고 복사해서 본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보는 학생이면 나은 편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필요한 내용만 찾아보는 아주 경제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수백 명이 수강을 하더라도 정작 책을 사서 보는 학생은 몇십 명 될까 말까다.

학생들에게 책 읽히려 한 마광수 교수가 장사꾼이라고?
도무지 사서 보려 하지 않는 요줌 풍조가 더 문제 아닐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책을 읽게 만드는 것, 그것도 교수 의무의 하나다. 가능한 한 많은 학생이 책을 사게끔 해서 출판문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만드는 것, 그것도 교수의 의무 중 하나다. 그런데 신문 기사에는 ‘자신이 쓰거나 번역한 책을 사도록 하는 일은 대학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교수가 자신이 쓴 책을 사서 보라고 하는 순간, 꼼짝없이 책 장사꾼이 되어 버릴 판이다. 강의와 관련된 책을 쓰지 않고 남이 쓴 책을 교재로 택하는 교수가 훨씬 훌륭한 교수가 되어 버릴 판이다.

 간단하게 정리해서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학생들이 도무지 책을 사서 보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인가, 아니면 교수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애를 쓰는 것이 더 문제인가?

 나도 내가 쓰고 선택한 교재를 학생들이 직접 사서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나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점잖아서만은 아니다. 비겁해서이기도 하다. 책 장사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런 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라도 학생들에게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히려는 용기가 없어서다.

 그런데 마 교수는 그 용기를 냈다. 그 행동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행했다면 용기가 있는 것이고 그러지 않았다면 그가 순수하거나 순진해서다. 꼭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교수가 교재로 정한 책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는 부수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그 신문은 마 교수를 완전히 책 장사꾼으로 만들었다. 마 교수가 장사꾼이라서가 아니다. 책을 커피와 똑같은 눈으로 보는 신문 스스로의 단세포적 시각 때문이다. 그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근본 문제를 볼 만한 안목이 없거나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게다가 ‘차마 못하고 삼가는’ 염치심도 없어서다.

 하긴 그런 아쉬움을 주는 건 그 신문만이 아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사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느 언론이나 문제가 된 개인의 신상을 그야말로 신나게 까발릴 뿐이다. 기껏해야 인사검증 시스템을 비판하고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비판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궁금해하는 것은 그 인사 스타일 뒤에 숨어 있는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다. 우리의 언론이 그렇게 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애쓰기를 바란다면 내 기대가 너무 큰 것인가?


[중앙일보 2013.4.4 삶의 향기 - 진형준 홍익대 교수·불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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