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63회 - "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순간 등줄기로 식은땀이 … "

영광도서 0 379


인간은 본래 간사하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내 청춘 시절엔 ‘요즘 세상 좋아졌다’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듣기 싫은 말이 없었다. 이 말은 대부분 “이 좋은 시절에~” 또는 “그 옛날 어려운 시절에~”로 시작해 청춘들을 훈계하고 질책하는 말의 서두나 후렴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때 결심했었다. ‘나는 나이 들어도 절대로 저런 말은 안 하리라’.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시건방졌던 젊은 시절의 오만을 반성한다. 어느새 나도 ‘요즘 세상 좋아졌다’를 툭툭 내뱉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엔 진심으로 ‘세상 좋아졌다’를 외친 일이 있다. 최신형 카메라를 보고서다. 이게 보도용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인데, 찍고 곧바로 인터넷망을 통해 전송할 수 있는 기능도 장착돼 있었다. 무슨 ‘뒷북’이냐 할지 몰라도 내겐 참으로 신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재기자 시절, 사진기자가 손이 모자랄 경우 보도용 사진까지 챙기며 고생했던 기억이 많아서다. 특히 해외출장 고생담은 8할 이상이 사진 때문이다. 필름 시절뿐 아니라 디지털카메라가 나온 후에도 자잘한 에러와 전송환경 문제 등으로 진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 선배는 사진 때문에 귀국을 앞당기기도 했단다. 이 카메라를 보면서 왕년의 기억이 새록새록해지고,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부러움도 저절로 일어났다. 실로 새로운 문명의 주인은 그 시대 젊은이들이기에.

 그러다 최근 한 젊은 친구와 얘기를 했다. ‘세상 좋아졌다’는 어른들을 지겨워하던 그 시절 내 또래의 젊은이. 그는 요즘 청춘들의 불행에 대해 늘어놨다. 입시지옥, 대학에서의 학점과 스펙 경쟁, 청년실업, 그리고 신분상승이 가로막힌 고착화된 사회. 또 똑똑한 386세대가 기득권을 독점하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요구사항은 많고,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불행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카메라에 감탄하던 내게 누군가 “다시 젊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었다. 순간 “그 시절을 어떻게 또”하며 기함을 했다. 등줄기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고 돌아보니 청춘은 행복하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청춘은 특권이라던 기성세대의 ‘청춘예찬’은 사기였다. 가능성은 많다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젊음처럼 힘겨운 건 없었다는 것도 기억났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더욱 고단하고 팍팍해 보인다. 그런 젊은 친구에게 고작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젊음을 견디다 보면 나이가 들 거라고. 지금 나는 젊어서 힘겹지는 않다. 그럼에도 주름살 보면 한숨 나오고, “젊어보인다”는 한마디에 감동하며 청춘을 부러워하는 이 모순된 감정은 또 무엇인지. 정말 나의 간사함이란….

[중앙일보 2013.4.6 분수대 -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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