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94회 - " 그림 그리다 보니 마음의 병이 어느덧 나았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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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아르브뤼(Art Brut)는 프랑스어로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을 뜻한다. 프랑스 화가 장 뒤비페(1901~85)가 정신장애인의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처음 사용했다. 원시성·초보성·선정성·창의성·격리·순수 등의 특징이 작품에 드러난다.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신의 왼쪽 귀를 스스로 자르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친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과학으로 풀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영화 ‘레인맨’이나 ‘머큐리’에 묘사된 것처럼 자폐증 환자가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새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현상도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일본은 아르브뤼 전용미술관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크다. 예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적은 풍토와 관련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아르브뤼는 아직 초보다. 김통원(56)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한국 아르브뤼’가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활동하는 정도다.
한국 아르브뤼엔 전속 화가 4명이 있다.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 정신지체인, 시각장애인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월 120만원 안팎의 임금을 지급한다. “외국엔 아르브뤼 옥션(경매)도 있는데, 국내는 저변이 약해 운영하기가 참 힘들다”고 김통원 교수는 말했다. 그런 김 교수에겐 요즘 ‘걱정 아닌 걱정’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일본의 아르브뤼 전문가들이 작품을 보고 극찬했던 작가 A씨(47·여)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것이다. 왜일까. “그림을 그리다가 병이 다 나은 것 같아요. 오랫동안 심한 정신분열증을 앓았는데, 언제부턴가 작품이 뜸해지더니 요새는 안 그리더라고요. 대신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 같은 일에 열심이고요. 제가 보기엔 완전히 정상인으로 돌아왔어요.” 창작 작업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의사가 아니라 장담은 못하지만 적어도 획기적인 치유 효과가 나타났다는 뜻일 게다. “물론 예술적으로는 아깝지요. 하지만 본인에겐 잘된 일 아닌가요”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예술이 정신적·신체적 장애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은 여러 측면에서 입증됐다. 아르브뤼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 늘어났으면 한다. 미국의 AFTA(Americans for the Arts)가 발표한 ‘예술을 후원해야 할 10가지 이유’에도 ‘예술은 치유 효과가 있다’라는 항목이 들어 있다. 입원기간을 단축하고 통증을 완화하며, 약물 투여량을 줄이는 효과다. 그래서 미국 의료기관의 절반가량이 환자·가족·직원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의 문화융성 정책이 예술치유에도 눈길을 주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2013.8.30 분수대 -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