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13회 - " 희망으로 시작한 새해 연말까지 이대로 … "

영광도서 0 450


갑오년(甲午年)이 밝았습니다. 삶이 무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건 새해 새날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시작 앞에선 희망적이니까요. 시간은 다만 흘러가는 것이어서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인데도 인류는 그 흘러가는 것에 시작과 끝을 두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순환토록 하였으니 어찌 절묘하지 않겠습니까.

 새해를 ‘아듀2013 해피2014’(JTBC)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며 맞았습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주요 뉴스를 추려 보면서 우린 참으로 무겁고 소란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이 회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국회의 막바지 법안 처리 상황이 속보 자막으로 중계되더군요. 지난해는 이렇게 마지막 1초까지 숨가빴습니다. 매체마다 벌였던 여론조사는 지난해 우리 사회의 불신과 실망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교수신문은 2013년을 마무리하는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스른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습니다. 이에 참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이 말은 춘추시대 초나라 왕에게 가족을 잃은 오자서가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된 후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의 가족을 죽였던 초평왕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번 내리쳤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니까요. 우리나라 지성인인 교수들이 2013년을 구원(舊怨)에 발목 잡혀 과거로 회귀했던 해, 퇴행의 한 해로 지적한 것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를 시작할 때는 희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교수신문은 당시 ‘제구포신(除舊布新·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편다)’을 새해의 한자로 꼽으며 신정부 출발에 큰 희망을 걸었습니다.

 교수들이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로는 ‘전미개오(轉迷開悟)’를 뽑았군요. 미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든다는 불교용어랍니다. 가짜와 거짓,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올바른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 노력하자는 뜻으로 꼽았답니다. 위정자들도 거짓과 눈속임을 중단하고 성찰해야 하지만 우리 국민도 각자가 스스로 맑은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범국민적 각성을 촉구한 화두가 마음에 듭니다.

 불교에서 지옥은 죽어 가기도 하지만 현세 중생의 마음에 있다지요. 그래서 전미개오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답니다. 또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도 악업을 지은 죄인에게 벌을 내리지만 오직 바라는 건 죄인들이 전미개오해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랍니다. 올해는 우리 각자가 옳은 길로 가려고 노력하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올해의 마무리 즈음엔 한탄과 비관이 아니라 잘살았다는 자부심과 사소한 행복을 회고하게 되길 바랍니다.



[중앙일보 2014.1.2 분수대 -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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