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21회 - " 무대는 사라져도 우정은 영원하다 "

영광도서 0 637


“아, 짜다.” 김연아의 외마디가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불면의 밤을 동행하던 대한민국 국민도 덩달아 눈살을 찌푸렸다. 국민엄마 김혜자가 광고에서 한 그 말 ‘오 이 맛이야’와는 사뭇 다른 이 짠맛의 성분과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연아에겐 짠맛이었지만 경쟁자에겐 단맛이었을 게다. 이것이 삶이다. 올림픽은 국민교과서다. 체육교과서이자 인생교과서다. 빙판에서나 심판석에서나 관중석에서나 페어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반전이 있어야 드라마가 생동감을 갖듯 반면교사조차 생생한 교훈을 전해준다.(아직도 화가 덜 풀렸다면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해보시길.)

 ‘인간미’를 한자로 쓰면 人間美가 아니라 人間味다. 눈을 즐겁게 하는 인간보다는 가슴을 덥혀주는 인간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외모나 실력은 감탄의 대상이지만 수양과 덕성은 감동의 영역이다. 스포츠의 세계라고 다를까. 체격과 체력보다는 체온이 생명의 본질에 가깝다. 단맛만 좋아하면 성장에 해롭다. 쓴맛·신맛·짠맛·매운맛 다 본 사람에게서 인간미가 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몇 해 전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연아의 좌우명이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고 해서 잠시 의아했었다. 터득하기엔 어린 나이인데. 하지만 어리다고 여린 건 아니었다. 강한 자보다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은 거다. 그리고 지금 연아는 이런 말을 한다. “간절한 자에게 금메달이 갔으니 저는 행복합니다.”

 승리는 순간이다. 영원한 승자가 되려면 무대에서 내려온 후가 중요하다. 승자의 여유는 짧고 성자의 여운은 길다. 연아의 ‘상속자들’에겐 드라마 제목을 하나 들려주면 좋을 듯하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승부의 세계에서 우정을 나눈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연아가 태어나던 1990년 가을 나는 ‘우정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었다. 프로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우정을 이어오는 ‘진짜 사나이’들이 여럿 있다. 촌스럽지만 슬로건도 있다. “무대는 사라져도 우정은 영원하다.” 그때 격주로 연출하던 후배 이대헌 PD와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었다. 김완선을 섭외하는 문제부터 미세한 시청률의 차이까지 우리는 매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우정의 무대’를 연출하는 두 PD가 실제로는 우정을 나누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부끄럽다.

 예능계에서 잘나가는 나영석 PD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에게 ‘한번 만나주세요’라고 애교 있는 글을 남긴 걸 보았다. 전화해서 만나면 될 텐데.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면 예능PD인 나도 저들을 즐겁게 만날 수 있었을까. 이기려 하지 않고 즐기게 만들어준 세월에 감사한다. 오늘은 이대헌 PD에게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2014.2.24 중앙일보 분수대 -주철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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