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29회 - " 종이책의 향기 "

영광도서 0 577


언제부턴가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를 타면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용 전자기기를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인터넷 검색과 게임 등에 열중해 있는 탓이다. 나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아 몇 년 전에 태블릿PC를 구입했다. 신국판 단행본 책 한권의 크기만 한 이 은색 모바일 PC를 구입한 건, 흔히 전자책이라 불리는 e-Book을 읽기 위해서였다. 물론 e-Book은 휴대폰이나 컴퓨터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여행을 갈 때,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질 때 등 일상의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나 쉽고 편리하게 좀 더 큰 화면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태블릿 PC는 매력적이었다.

영화 보기와 같은 전자책의 독서

그뿐만 아니라 활자의 크기와 서체, 화면의 밝기를 자신의 취향과 시력에 맞추어 조절해 가며 읽을 수 있다. 또한 책을 읽다가 필요한 부분을 복사하여 이메일이나 SNS로 전송하거나 메모판에 편리하게 보관을 할 수도 있다. 책이라면 당연히 종이로 만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전자책의 출현은 예전에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니 책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구분해서 표기해야 하는 날이 올 줄은 당연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e-Book 시스템은 서점에서처럼 다양한 책들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보편적인 고전문학이나 시, 소설, 에세이, 각 분야의 잡지 등을 읽기에는 별무리가 없었다.

거기에다 e-Book 한 권을 다운로드 받는 구입 비용이 종이책 한 권의 절반 정도이니 경제적으로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런 연유로 한동안 이 태블릿PC를 밤이나 낮이나 곁에 두고 살았다.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러다 언젠가는 종이책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책장에 꽂힌 종이책들을 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독서란 그저 최신 정보나 지식만을 습득하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신문'이라고 하면 갓 인쇄되어 배달된 접혀 있는 신문 특유의 모양과 냄새를 기억하듯이, 나의 독서 경험에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한 권의 책이 가진 표지의 인상과 종이의 재질이 주는 촉감과 서체의 느낌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내가 읽은 책 한 권의 내용을 기억할 때는 그 책을 산 곳과 읽은 장소와 그 책이 가진 전반적인 인상까지가 다 망라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쉽게 읽고 지워 버리는 전자책의 독서는 왠지 저자의 사유가 담긴 언어가 가슴에 새겨지지 않고 스쳐 지나가 버리는 듯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좋은 책은 향기를 가진다

쉽고 편리하게 읽은 만큼 또한 쉽게 가슴에서 지워지고 잊혀 버리는 '가벼운 책 읽기', 그런 느낌을 나는 e-Book을 통한 독서에서 받고 있었던 듯하다. 책장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으나 마음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책들이 많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하면서 나는 다시 종이책의 독서로 귀환하게 되었다. 한 번 읽고 지워 버리면서 다시 새로운 책을 다운로드 받는 그런 전자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가며 수시로 읽고 싶은 종이책들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처럼 향기를 지니고 있다.

전자책에 대응하는 종이책의 미래가 어떠할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종이)책은 태생적으로 다품종 소량소비의 '마니아 미디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했던 어느 출판인의 말을 이해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자책 덕분이다.


[2014.4.1. 부산일보 문화칼럼- 김형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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