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48회 - " 카프카를 찾아서 "
영광도서
0
572
2016.12.01 13:07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다녀왔다. 직항 편을 타지 않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했는데, 루프트한자의 보잉 747 여객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할 때는 은근히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라도 흘러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세계 최대의 허브 공항 가운데 하나라지만 내가 아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서두에 등장하는 공항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중년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착륙 즈음에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자 옛 시절이 떠올라 격한 감정에 빠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스튜어디스가 안부를 묻자 괜찮다고 대답하는 게 소설의 서두다. 한때는 비틀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루프트한자 비행기에서는 “곧 착륙할 테니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라”는 방송만 나왔다. 그리고 프라하행으로 환승하기까지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첫 유럽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특별히 프라하를 선택한 건 ‘카프카의 도시’여서다. 카프카의 동시대를 살았던 프라하의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그가 이 도시의 대표적 인물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평생을 프라하에서 살았고 이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꿈꿨지만 그는 프라하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적었다. ‘베를린은 프라하의 해독제’라고도 말했지만 그의 베를린 체류는 말년의 수개월로 그쳤다. 그는 빈 근교의 결핵요양원에서 숨졌고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생전에는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의 죽음이었지만, 사후에 그는 20세기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나 같은 이방의 독자도 그의 흔적을 찾아 프라하를 방문하게 만든 작가.
한밤중에 도착한 프라하 공항은 생각보다도 더 작았고, 안내판에 한글도 포함돼 있어서 놀라웠다. 짐을 찾아서는 거의 아무런 수속 없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로비로 들어서니까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택시기사가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숙소까지 가면서 어둠에 잠긴 프라하에 대한 인상을 몇 마디 해보려고 했지만 기사는 영어에 서툴다면서 거의 입을 다물었다. 우리 가족이 어디서 왔느냐고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예약손님이었으니까 이미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지만 숙소에 도착하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기사는 프라하 시내 지도와 함께 안내책자를 친절하게 건네주고 떠났다. 호텔 로비에서 수속을 마친 뒤 객실에 여장을 풀자 비로소 프라하에 안착한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생각만큼 낯설지는 않은 데서 느껴지는 특이한 편안함.
이 편안함에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얹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커다란 객실 창의 커튼을 걷어내자 바로 눈앞에 사진으로만 보던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멀리 프라하성을 본 게 아니라 창문 밖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거미들을 본 거였다. 카프카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카프카에스크’란 말은 이런 풍경에도 들어맞지 않을까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과 창문의 거미들이 빚어내는 부조화.
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카프카를 찾아서 프라하에 왔지만 어쩌면 결코 카프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으로 이어졌다. 카프카의 『성』에서 측량기사 K가 전갈을 받고 성에 도착하지만 중심부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카프카의 문학은 그러한 실패의 반복적인 기록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흔적에 대한 순례도 그러한 실패의 반복으로서만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다리 카를교를 건너서 프라하성을 둘러보고 그의 작업실이 있던 황금 소로의 계단 길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마다 안내판이 붙어있던 카프카박물관에 들러 그의 유고와 유품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실패를 예감해서였을까. 프라하를 떠날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을 되새기자면, 거꾸로 나는 프라하에 들어가기도 전에 프라하를 떠나야 했다. 프라하를 떠나는 것만 내겐 허용됐다.
[중앙일보 2014.8.26 삶의 향기 - 이현우 북칼럼리스트]
특별히 프라하를 선택한 건 ‘카프카의 도시’여서다. 카프카의 동시대를 살았던 프라하의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그가 이 도시의 대표적 인물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평생을 프라하에서 살았고 이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꿈꿨지만 그는 프라하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적었다. ‘베를린은 프라하의 해독제’라고도 말했지만 그의 베를린 체류는 말년의 수개월로 그쳤다. 그는 빈 근교의 결핵요양원에서 숨졌고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생전에는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의 죽음이었지만, 사후에 그는 20세기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나 같은 이방의 독자도 그의 흔적을 찾아 프라하를 방문하게 만든 작가.
한밤중에 도착한 프라하 공항은 생각보다도 더 작았고, 안내판에 한글도 포함돼 있어서 놀라웠다. 짐을 찾아서는 거의 아무런 수속 없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로비로 들어서니까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택시기사가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숙소까지 가면서 어둠에 잠긴 프라하에 대한 인상을 몇 마디 해보려고 했지만 기사는 영어에 서툴다면서 거의 입을 다물었다. 우리 가족이 어디서 왔느냐고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예약손님이었으니까 이미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지만 숙소에 도착하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기사는 프라하 시내 지도와 함께 안내책자를 친절하게 건네주고 떠났다. 호텔 로비에서 수속을 마친 뒤 객실에 여장을 풀자 비로소 프라하에 안착한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생각만큼 낯설지는 않은 데서 느껴지는 특이한 편안함.
이 편안함에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얹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침에 커다란 객실 창의 커튼을 걷어내자 바로 눈앞에 사진으로만 보던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멀리 프라하성을 본 게 아니라 창문 밖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거미들을 본 거였다. 카프카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카프카에스크’란 말은 이런 풍경에도 들어맞지 않을까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과 창문의 거미들이 빚어내는 부조화.
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카프카를 찾아서 프라하에 왔지만 어쩌면 결코 카프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으로 이어졌다. 카프카의 『성』에서 측량기사 K가 전갈을 받고 성에 도착하지만 중심부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카프카의 문학은 그러한 실패의 반복적인 기록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흔적에 대한 순례도 그러한 실패의 반복으로서만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다리 카를교를 건너서 프라하성을 둘러보고 그의 작업실이 있던 황금 소로의 계단 길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마다 안내판이 붙어있던 카프카박물관에 들러 그의 유고와 유품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실패를 예감해서였을까. 프라하를 떠날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을 되새기자면, 거꾸로 나는 프라하에 들어가기도 전에 프라하를 떠나야 했다. 프라하를 떠나는 것만 내겐 허용됐다.
[중앙일보 2014.8.26 삶의 향기 - 이현우 북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