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53회 - " 나이가 드는 즐거움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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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1980년대 후반, 신촌 주변에는 디스코테크가 몇 군데 있었다. 신촌 로터리에도 있었고, 이화여대 앞에도 있었는데, 남학생들은 아무래도 이대 쪽이 더 끌리게 마련이었다. 2000원 정도였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서도 남학생들은 멋진 여대생과의 환상적인 만남 같은 걸 기대했겠지만, 디스코테크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거기에는 남자들과, 또 다른 남자들과, 게다가 남자들뿐이라는 것. 요컨대 여자 없는 남자들의 소굴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린 음악을 틀어주는 소위 ‘블루스 타임’은 휴식시간을 뜻했다. 그 시간이면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를 주문하느라 플로어가 텅 비었다. 다시 댄스음악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생맥주를 머금고 바라보던 텅 빈 플로어의 한가로운 미러볼 조명이 꿈 속의 빛처럼 아련하다. 그런 광경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면, 아마도 레너드 코언의 ‘아임 유어 맨’이 아닐까?
음악 사이트에 갑자기 레너드 코언의 이름이 올라오기에 뭔가 해서 읽었더니 오는 23일에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뉴스였다. 부고 같은 게 아니라 새 앨범이라니, 어찌나 반가운지. 신촌의 디스코테크를 전전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건 전생의 일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는데, 그 시절에 읽고 들었던 쿤데라의 신간이나 코언의 신보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내 인생이 꿈은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하게 된다.
‘아임 유어 맨’을 부를 때 레너드 코언은 몇 살이었나 따져봤더니 54세였다. ‘아임 유어 맨’에 맞춰서 블루스를 추는 남녀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참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청년들의 연애를 위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54세의 캐나다 가수를 떠올리면 말이다. ‘당신이 권투선수를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 나는 링에 오르겠어요’라던 가사를 생각하면 더욱 더. 링은 내가 지킬 테니까 젊은이들은 블루스를 춰라. 그런, 백전노장의 느낌이랄까.
그러나 같은 앨범에 실린 다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실렸다는 점이 함정이다. ‘이제 내 친구들은 떠나고 머리는 하얘졌지. 전에는 놀던 곳에서 이제는 아픔을 느끼네.’ 그로부터 7년 뒤, 요즘에도 그런 곳에서 아픔을 느끼느냐고 누군가 묻자 코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요는 누구나 늙는다는 점이다. 젊음과 마찬가지로 늙음도 공짜처럼 그저 주어진다. 그래서 원하지도 않는데 손에 쥐여주는 전단지처럼 젊음이나 늙음이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긴 해도 늙음은 두 번째의 전단지 같은 것이다. 인간이 현명하게 젊기란 힘든 일이지만, 현명하게 늙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코언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프랑스의 농부 폴 베델은 올해 84세다. 이 사람이 구술한 말들을 정리한 책 『농부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니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늙을 수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첫사랑을 잃은 뒤 평생 독신으로 산 폴 베델이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부분이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그 시절의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약혼하고 결혼했습니다. 나는 바보, 멍청이였습니다.”
이 ‘바보, 멍청이’가 농사에 대해 말할 때는 완전히 바뀐다. “뜻하지 않게 6월에 보름이 세 번 있으면 예상 밖의 만조 때문에 바닷물이 밭으로 들어와 곡식이 전부 썩어버립니다.” 인생 전반에 대한 몽롱한 지혜가 아니라 손아귀에 쥐고 굴리는 두 개의 조약돌처럼 구체적인 지식들. 뭔가 말해야만 한다면, 나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사람만 되어도 좋겠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되는 일만큼 슬픈 일은 없으리라. “여전히 자신을 어리석고 하찮다고 생각하지만 내 삶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폴 베델은 “그건 분명 다른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맞다. 그건 분명 다른 것이다.
[중앙일보 2019.9.20 삶의 향기 - 김연수 소설가]
그렇기 때문에 느린 음악을 틀어주는 소위 ‘블루스 타임’은 휴식시간을 뜻했다. 그 시간이면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를 주문하느라 플로어가 텅 비었다. 다시 댄스음악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생맥주를 머금고 바라보던 텅 빈 플로어의 한가로운 미러볼 조명이 꿈 속의 빛처럼 아련하다. 그런 광경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면, 아마도 레너드 코언의 ‘아임 유어 맨’이 아닐까?
음악 사이트에 갑자기 레너드 코언의 이름이 올라오기에 뭔가 해서 읽었더니 오는 23일에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뉴스였다. 부고 같은 게 아니라 새 앨범이라니, 어찌나 반가운지. 신촌의 디스코테크를 전전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건 전생의 일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는데, 그 시절에 읽고 들었던 쿤데라의 신간이나 코언의 신보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내 인생이 꿈은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하게 된다.
‘아임 유어 맨’을 부를 때 레너드 코언은 몇 살이었나 따져봤더니 54세였다. ‘아임 유어 맨’에 맞춰서 블루스를 추는 남녀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참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청년들의 연애를 위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54세의 캐나다 가수를 떠올리면 말이다. ‘당신이 권투선수를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 나는 링에 오르겠어요’라던 가사를 생각하면 더욱 더. 링은 내가 지킬 테니까 젊은이들은 블루스를 춰라. 그런, 백전노장의 느낌이랄까.
그러나 같은 앨범에 실린 다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실렸다는 점이 함정이다. ‘이제 내 친구들은 떠나고 머리는 하얘졌지. 전에는 놀던 곳에서 이제는 아픔을 느끼네.’ 그로부터 7년 뒤, 요즘에도 그런 곳에서 아픔을 느끼느냐고 누군가 묻자 코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요는 누구나 늙는다는 점이다. 젊음과 마찬가지로 늙음도 공짜처럼 그저 주어진다. 그래서 원하지도 않는데 손에 쥐여주는 전단지처럼 젊음이나 늙음이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긴 해도 늙음은 두 번째의 전단지 같은 것이다. 인간이 현명하게 젊기란 힘든 일이지만, 현명하게 늙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코언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프랑스의 농부 폴 베델은 올해 84세다. 이 사람이 구술한 말들을 정리한 책 『농부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니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늙을 수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첫사랑을 잃은 뒤 평생 독신으로 산 폴 베델이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부분이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그 시절의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약혼하고 결혼했습니다. 나는 바보, 멍청이였습니다.”
이 ‘바보, 멍청이’가 농사에 대해 말할 때는 완전히 바뀐다. “뜻하지 않게 6월에 보름이 세 번 있으면 예상 밖의 만조 때문에 바닷물이 밭으로 들어와 곡식이 전부 썩어버립니다.” 인생 전반에 대한 몽롱한 지혜가 아니라 손아귀에 쥐고 굴리는 두 개의 조약돌처럼 구체적인 지식들. 뭔가 말해야만 한다면, 나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사람만 되어도 좋겠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되는 일만큼 슬픈 일은 없으리라. “여전히 자신을 어리석고 하찮다고 생각하지만 내 삶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폴 베델은 “그건 분명 다른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맞다. 그건 분명 다른 것이다.
[중앙일보 2019.9.20 삶의 향기 -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