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14회 - " 올림픽은 금메달을 위해 존재하는가? "
영광도서
0
513
2016.12.01 13:08
낮밤이 반대인 브라질에서 올림픽 경기를 하다 보니 현장 중계로 경기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예전만큼 올림픽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덜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런던 올림픽 때처럼 금메달 따는 선수 숫자가 많았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새벽잠을 포기하면서라도 텔레비전을 볼 텐데, 아쉽게도 리우 올림픽에서의 메달 수는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올림픽을 보면서 너무 이기는 것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도 해 본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나가서 경기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따는 선수보다는 메달권 밖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는 우리 선수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통계를 살펴봐도 리우 올림픽보다 메달 성과가 좋았던 지난 런던 올림픽 출전 선수 248명 가운데 한 게임도 지지 않고 모든 경기를 우승한 선수의 숫자는 단체전 금메달 선수를 포함해 총 18명이었다. 하지만 그 숫자보다 월등히 많은 230명의 선수가 경기에 지거나 메달권에 들지 못해 조용히 귀국한다. 만약 올림픽을 하는 이유가 경쟁을 통해 내 실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금메달을 따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성공하는 사람들과 대다수의 실패자들을 양산하는 불행한 무대가 돼버린다. 은메달을 따고도 자신은 “금메달을 못 따 영웅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북한 역도의 엄윤철 선수처럼 말이다.
올림픽을 포함해 우리 인생을 항상 이렇게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면 1등이 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초라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더불어 나를 누르고 올라선 소수의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 박탈감 또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가치를 둔다면 다른 사람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이요, 나의 실패가 타인의 성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우리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목표만 이룰 수 있다면 몇 년간의 과정은 즐기기는커녕 그냥 참고 견디는 삶이 돼버린다. 게다가 나의 가치를 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등수로 매겨진다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가치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쾌하고 행복한 기운을 전달해 준 선수들 중 푸위안후이(傅園慧)라는 중국 여자 수영 선수가 있다. 그녀가 100m 배영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듣고 “헉, 제가 그렇게 빨랐어요?” 하고 깜짝 놀라는 코믹한 표정을 지어 세계 여러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푸위안후이 선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드러냈다는 사실에 좋아했고, 1등을 못했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본인이 쓸 수 있는 일체의 모든 힘, 홍황의 힘(洪荒之力)까지 써가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다. 즉, 비교 대상을 금메달 선수의 기록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평소 본인 실력에 비해 좋았는지에서 의미를 찾았다.
DA 300
또한 그녀보다 0.01초 빨리 들어온 선수가 있어 아깝게도 은메달을 놓쳤다는 기자의 말을 듣자 푸위안후이 선수는 아주 쿨하게 답했다. 아마도 자기 팔이 은메달을 딴 선수의 팔보다 조금 짧아서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팔다리가 백인이나 흑인이 비해 짧은 동양인의 신체 구조로 육상이나 수영에서 그들과 똑같이 경쟁한다는 것은 어려운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기록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인 몸의 구조, 경기 당일의 날씨와 컨디션, 어떤 심판을 만났고 예선전에서 누구와 경쟁했는지 등 여러 가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운도 분명 작용한다. 그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도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라고 여기는 것도 맞지 않고, 반대로 성적이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고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며 두고두고 자책하는 것도 맞지 않다.
지금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는 두 명의 육상 여성 선수의 이야기가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5000m 달리기에서 미국 선수와 뉴질랜드 선수가 경기 도중에 넘어졌는데 바로 일어난 미국 선수가 자기 혼자만 달리지 않고 같이 넘어진 뉴질랜드 선수를 도와 끝까지 완주하도록 한 것이다. 매일 아침 올라오는 나라별 올림픽 메달 집계 현황도 중요하지만 경쟁이 아닌 우정과 협력의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에서 지고 돌아올 많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그대가 그대 인생의 승자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중앙일보 2016.8.19 | 마음산책 - 혜민스님]
통계를 살펴봐도 리우 올림픽보다 메달 성과가 좋았던 지난 런던 올림픽 출전 선수 248명 가운데 한 게임도 지지 않고 모든 경기를 우승한 선수의 숫자는 단체전 금메달 선수를 포함해 총 18명이었다. 하지만 그 숫자보다 월등히 많은 230명의 선수가 경기에 지거나 메달권에 들지 못해 조용히 귀국한다. 만약 올림픽을 하는 이유가 경쟁을 통해 내 실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금메달을 따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성공하는 사람들과 대다수의 실패자들을 양산하는 불행한 무대가 돼버린다. 은메달을 따고도 자신은 “금메달을 못 따 영웅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북한 역도의 엄윤철 선수처럼 말이다.
올림픽을 포함해 우리 인생을 항상 이렇게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면 1등이 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초라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더불어 나를 누르고 올라선 소수의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 박탈감 또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가치를 둔다면 다른 사람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이요, 나의 실패가 타인의 성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우리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목표만 이룰 수 있다면 몇 년간의 과정은 즐기기는커녕 그냥 참고 견디는 삶이 돼버린다. 게다가 나의 가치를 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등수로 매겨진다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가치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쾌하고 행복한 기운을 전달해 준 선수들 중 푸위안후이(傅園慧)라는 중국 여자 수영 선수가 있다. 그녀가 100m 배영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듣고 “헉, 제가 그렇게 빨랐어요?” 하고 깜짝 놀라는 코믹한 표정을 지어 세계 여러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푸위안후이 선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드러냈다는 사실에 좋아했고, 1등을 못했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본인이 쓸 수 있는 일체의 모든 힘, 홍황의 힘(洪荒之力)까지 써가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다. 즉, 비교 대상을 금메달 선수의 기록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평소 본인 실력에 비해 좋았는지에서 의미를 찾았다.
DA 300
또한 그녀보다 0.01초 빨리 들어온 선수가 있어 아깝게도 은메달을 놓쳤다는 기자의 말을 듣자 푸위안후이 선수는 아주 쿨하게 답했다. 아마도 자기 팔이 은메달을 딴 선수의 팔보다 조금 짧아서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팔다리가 백인이나 흑인이 비해 짧은 동양인의 신체 구조로 육상이나 수영에서 그들과 똑같이 경쟁한다는 것은 어려운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기록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인 몸의 구조, 경기 당일의 날씨와 컨디션, 어떤 심판을 만났고 예선전에서 누구와 경쟁했는지 등 여러 가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운도 분명 작용한다. 그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도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라고 여기는 것도 맞지 않고, 반대로 성적이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고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며 두고두고 자책하는 것도 맞지 않다.
지금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는 두 명의 육상 여성 선수의 이야기가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5000m 달리기에서 미국 선수와 뉴질랜드 선수가 경기 도중에 넘어졌는데 바로 일어난 미국 선수가 자기 혼자만 달리지 않고 같이 넘어진 뉴질랜드 선수를 도와 끝까지 완주하도록 한 것이다. 매일 아침 올라오는 나라별 올림픽 메달 집계 현황도 중요하지만 경쟁이 아닌 우정과 협력의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에서 지고 돌아올 많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그대가 그대 인생의 승자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중앙일보 2016.8.19 | 마음산책 -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