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놓쳐버린 기회가 가슴을 저밀 때

영광도서 0 573

대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새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과연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앞으로 취업에 진짜 도움이 될까' 하는 걱정임을 알게 됐다. 가슴이 아려왔다. 나 또한 취업이 걱정이긴 했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반드시 취업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저런 현실적 걱정 때문에 내가 '대학에서 정말로 배워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할까 봐 걱정이었다. 대학은 내게 취업의 관문이 아니라 '인생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스스로 탐구하는 곳, 가슴 아픈 방황마저도 창조와 배움의 에너지가 되는 장소였다. 내가 대학 생활에서 후회하는 것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할 만한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한 것, 더 깊이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 그리고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새로운 도전 자체를 두려워한 것이었다.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는 버릇이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에 대한 사랑을 삶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우리는 길을 잃은 뒤에야,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는 소로의 속삭임이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두드린다.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처럼 살고 싶다는 소로의 결심이 매번 싱그러운 울림으로 다시 다가온다. 얼마 전에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를 읽다가 가슴 저미는 문장을 찾아냈다. "나는 당신이 사랑을 놓쳐버렸고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으며 체념으로 하루살이처럼 살아온 데 대해 고소합니다." 바로 이런 뼈아픈 후회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순간을 마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놓쳐버린 생의 모든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헛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에 집착하는 한,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닌 '남들이 부추기는 삶'을 향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놓쳐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도 없고, 행복해야 할 의무에 충실할 수도 없으며, '그 꿈은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자'는 습관화된 체념으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없다. 

 

신학자 프레데릭 뷔히너(Frederic B?chner)는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정의를 내렸다. "직업은 당신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서로 만나는 장소다." 세상의 깊은 허기를 읽어내는 눈길, 그리고 세상의 깊은 허기와 자신의 진정한 기쁨을 일치시킬 줄 아는 마음의 안테나가 필요한 요즘이다. 조성진이 협연한 베토벤의 '황제' 실황을 TV로 시청하면서 나는 '오직 한 번뿐인 생의 눈부신 반짝임'을 보았다. 조성진의 재능은 단지 최고의 테크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음악조차 세상에 처음 출현하는 작품처럼 눈부신 싱그러움으로 되살려내는 음악적 감수성이었다. 나는 그토록 여러 번 들었던 그 작품이 마치 오늘 이 무대에서 완전히 초연되는 듯한 싱그러운 감동을 맛보았다. 무언가를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저런 표정, 저런 느낌, 저런 열정에서 우러나오는구나. 부럽고, 아름답고, 눈부셨다. 

 

우리가 이렇게 생에 한 번뿐인 눈부신 반짝임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서 연주되는 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이 순간은 오직 한 번뿐이니. '세상이 목말라하는 것들'을 찾기 위해 부디 유행이나 대세를 따라가지 않기를. 다만 자기 안의 목마름을 세상의 목마름과 합치시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의 열정'과 '세상의 허기'를 일치시키는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중앙일보 2017.12.30 삶의 향기 -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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