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자신이 누군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예술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하고 살아갈지 자신의 본질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과정이다.’
―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중
예전에 전남 여수와 순천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오며 가며 세 권의 책을 읽었는데 모두 좋았다.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어요?”라는 동행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왜 책을 읽는지 고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쎄, 잘 모르겠네요”라는 멋없는 답변을 한 뒤 오래 고민했다. 무언가를 읽는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쓰는 건 돈이요, 쌓는 건 책인 삶은 인생에 예민함과 불편만 더할 뿐 썩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은 더 모르겠고 인생은 혼란만 커진다. 딱히 책을 읽어야 할 명확한 이유는 없는지도 모른다.
여수와 순천은 참 좋았다.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자고, 사랑하며 걸었다. 놓치고 있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 두었다. 어떤 곳이든 삶의 현장을 벗어나면 상쾌하다. 아무리 멋진 곳이라도 삶의 현장이 되면 무미건조해진다.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오가려는 이유다. 모든 것에는 고유의 태도가 있다. 우리는 인간, 음악, 사물, 예술, 자연과 같은 만물이 주는 태도를 감상하며 산다. 형식, 작품, 독서, 여행이란 말로 단어만 달라질 뿐 다가오는 모든 태도는 삶에 감응을 준다. 우리는 감동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특별했던 감흥은 곧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된 낭만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고, 여행을 가고, 책을 읽는 이유는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삶의 감흥을 되찾으려는 행위다. 일상의 안전망을 벗어나 생의 이면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해진 곳에서 안전하지만 확실한 종말을 기다리는 순례자가 아닌, 낯선 곳과 불확실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무법자들이 시대에 순응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2020.1.20 동아일보 | 내가 만난 명문장 -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