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물 한 방울에 세상을 담다

영광도서 0 994

해 아래 사는 누구에게나 세월의 흐름은 공평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한평생이 순식간이요, 또 다른 이들에게는 한순간도 영겁이다. 요즘처럼 칩거 생활이 길어지면 외출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겨운 나날이겠지만, 분주한 농사일에 독서삼여(讀書三餘)의 틈새를 찾던 옛 서생들에게는 호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은 칩거를 해도 집안 가득한 문명의 이기들로 심심함이 덜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아무런 재밋거리를 찾을 수 없는, 지루함과 무료함이 압도하던 시절에 향리의 촌가나 산중의 초당에 한거(閑居)하며 살던 조선 선비들은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역설적이게도 방에 요술 방망이 같은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있는 작금의 젊은이들은 외출하려고 난리지만, 선비들은 그 휑한 방구석에서도 어쩌면 자기 인생의 최고의 낙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이 머문 그곳은 책 읽는 기쁨, 글 쓰는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 바로 문방(文房)이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구처럼, 이들에게는 술에 취한 즐거움도 순간이요(醉鄕如瞬息) 잠자는 재미도 잠깐이지만(睡味只須臾), 시를 짓지 않고는 즐길 일이 없었고(除詩無以娛) 책을 읽지 않고는 일락이 없었던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선비들의 평생 과제였다.

 

 

지루함과 무료함이 압도하던 시절


선비들의 화두는 책 읽고 글 쓰는 일


문방십우 중 연적, ‘탈속’의 상징


끝내는 인류 역사까지 바꾸는 단초

 

 

초당에 홀로 앉아 학문을 해도 그들은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머무는 곳에는 늘상 친우들이 있었는데, 문방사우(文房四友)와 문방십우(文房十友)가 그것이다. 중국에서는 고귀한 것이라 하여 사보(四寶) 또는 사후(四侯)라고도 부르는 문방사우는 서예의 기본 재료를 이루는 종이·붓·벼루·먹(紙筆硯墨)을 일컫는다. 거기에 붓 씻는 통인 필세(筆洗), 붓을 담는 필통(筆筒), 붓걸이인 필가(筆架), 종이를 고정시키는 서진(書鎭), 벼루 가리개인 연병(硯屛), 벼루에 물을 붓는 연적(硯滴)을 더해 십우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이 학문하는 이들의 애용품이지만, 그중에서도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가장 예술적으로 승화되면서 다양하게 생산된 문방 도구가 바로 연적이다.

 

먹물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이 도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연적, 일본에서는 수적(水滴), 중국에서는 서적(書滴) 또는 수주(水注)라고도 일컫는다. 연적이 나오기 전에는 물을 담아두는 작은 용기인 수우(水盂)라는 것이 있었는데, 작고 긴 숟가락인 수우작(水盂勺)을 이용하여 물을 떠서 벼루에 따르곤 했다. 이러한 수우에서 발전하여 기압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 연적인데, 이것은 물이 들어가는 입수구와 물이 나오는 출수구가 있어, 그것을 한 손에 잡고 입수구를 검지로 개폐하므로 주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벼루에는 먹물이 고이는 자리인 움푹 파인 연지(硯池)와 먹을 가는 자리인 평평한 연당(硯堂)이 있는데, 이 연당에 물을 조금씩 부어 먹을 간 후에 연지에 밀어 담고 이를 반복하면서 먹물을 만든다. 그러면 연적에서 나온 물과 먹이 하나가 되어 맑으면서도 진한 발묵(潑墨)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여튼 이 연적은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18세기 조선의 청화시명팔각형연적의 시문처럼, ‘속이 텅 비어 있고 찌꺼기가 없이 정결하여( 효而有腔 淨而無滓), 가히 문방의 보물이요 군자의 기물(文房是寶 君子之器)’ 이다. 연적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욕심이 없는 시골 선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장에는 깨끗한 물을 지녔고, 토해 내는 것도 이로운 것이니(心臟淸水 吐納利物) 인간들도 이 연적만큼만 된다면 속세로부터의 출가가 왜 필요하며, 예토(穢土)와 정토(淨土)의 경계가 어디 있으랴.

 

이 연적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은 연당에서 먹과 몸을 섞어 검게 변신을 한 다음, 연지에서 고여 있든지 아니면 별도의 먹물 저장통인 연수기(硯水器)로 이사를 하여 머물다가 자기를 낚아채는 붓을 되레 검게 물들게 하면서 천이나 종이 위에 천년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람도 가고 나라도 사라지지만 이 먹물 자국은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 그래서 살아생전 일만 수를 작시했던 남송의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소상의 산이라 해봐야 붓 한 자루만 하고(瀟湘之山可當一枝筆), 소상의 물이라 해봐야 연적 하나에 다 담긴다(瀟湘之水可充一硯滴)’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다. 실로 작은 연적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 먹물의 강이 되어 시의 들판과 학문의 언덕을 이루며 세상을 아름답고도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강진에서 가르쳤던 제자 황상(黃裳)은 천개산 아래 방 한 칸짜리 ‘일속산방(一粟山房)’을 지어 놓고 그 좁쌀 한 알에 수미산(須彌山)이 담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 좁쌀에만 수미산이 담기나. 물 한 방울에도 온 세상이 다 담기는데.

 

[부산일보 2020.5.29 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 전고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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