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91- 짐승과 인간 사이

영광도서 0 459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사람이 변한다, 이 말은 사람 자체가 변한다기보다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변한다는 의미이다. '원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한다면 그는 변했다는 뜻이다. 여기엔 긍정적인 변화가 있고 반면 부정적인 변화가 있다. 물론 변화는 모두 좋다는 뜻은 아니다. 바람직한 변화가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도 당연히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변하긴 할까? 변하기를 그렇게 원해도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게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인간은 세상의 모든 동물들 중에 아주 별종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이다. 딱히 정의할 수 없는 동물이다. 짐승만도 못한 면이 있는가 하면, 짐승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고귀한 면도 있다. 먹고 사는 문제 또는 교미의 문제로 보면 짐승이라면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유치하게 식욕이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짐승만도 소위 개만도 못한 존재의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 어떤 짐승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인간은 때로 식욕이나 성욕을 넘어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타자의 어려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짐승만도 못한 면에서부터 짐승 같은 면, 짐승은 꿈도 못 꿀 고상한 면도 지닌 존재로 아주 잡다한 존재이다.

 

이에 따라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그대로 지구 위에 공존한다. 짐승만도 아주 못한 사람, 짐승 같은 사람, 짐승보다 훨씬 나은 고상한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따로 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산다. 사람들은 잡다한 모습으로 아주 다양한 존재들을 배출하며 복잡하게 산다.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굳이 정의를 내리라면 만일 70억의 인간이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은 70억 가지의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인간은 그 인구수만큼 각자 다른 인간이 존재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다. 다만 인간이 고만고만하게 보이는 이유는 사회라는 제도, 관습이나 법, 타인의 시선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소위 제멋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발현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만들어 나름 평화롭게 살기 위한 궁여지책을 교육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제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질 차례이다. 교육은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인간교육이라 하면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변화시킴을 뜻한다. 이를테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를 짐승보다 나은 어떤 기준을 정한다. 그 기준에 이른 존재를 인간다운 인간이라 규정한다. 그 표준형 인간을 설정한다. 표준에 부합하도록 의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의도적으로 표준형 인간을 만든다. 이것이 인간교육 아니겠는가. 따라서 교육을 받은 인간일수록 인간은 고유한 자기 본능을 누르는 대신 표준형에 걸맞게 변화를 시도한다. 당연히 인간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본능자체, 고유한 인간으로 산다기보다 절제된 인간, 거세당한 인간, 표준형 인간으로 살아감을 의미하니 개성을 죽이며 삶을 뜻한다. 따라서 교육은 피상적으로 때로는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기도 하지만 교육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개성을 죽이고 문명화, 사회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정체성, 그것은 곧 자신을 위해 살면서 또한 타인을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사는 존재, 위선을 당연한 것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다운 인간, 이는 고유본능을 적절히 절제하며, 그럼에도 고유본능을 드러내려 애쓰며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고유한 자신을 버리고 적절히 변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짐승은 변하지 않아도 인간은 변한다. 변하지 않아도 변한 척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변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때문에 인간다운 인간으로 행복을 추구하려면 나에게 득이 되었을 때 흡족한 기쁨보다 타인에게 득을 주었을 때의 기쁨이 크다는 내적 즐거움을 터득하는 존재로 변할 수 있다면 인간다운 인간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짐승보다 나은 존재니까.

 

“나는 네가 웃을 때, 내가 너에게 웃음을 주었을 때, 그때가 내가 기쁠 때보다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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