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03-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마음

영광도서 0 551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 날갯짓을 시작한다.”

 

헤겔의 이 말은 여러 해석을 낳는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멋진 문장이다. 우선 이 말은 본래 “올빼미는 밤에 활동한다.”는 문장에서 시작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다. 특별한 의미 없이 올빼미는 야행성이라는 올빼미의 생태를 확인한 문장에 다름 아니다.

 

헤겔은 이 문장에다 ‘미네르바’ 곧 그리스신화에서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로마신화 명 미네르바를 덧붙였으니, 이제 올빼미는 지혜의 여신으로 지칭 대상이 바뀐다. 곧 지혜란 뜻으로 변한다. 여기에 황혼 무렵으로 바꾸었으니, 밤과 구별한다. 밤이란 단어는 시작과 끝을 구분하지 않은 활동시간 전체를 말한다면 황혼 무렵은 밤의 시작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황혼이란 말은 이제 날갯짓을 시작하는 시간을 말한다. 즉 올빼미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어쩌면 활동 전체보다 활동 시작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언뜻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거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만 지혜의 시작을 이른 말로 해석한다면, 무조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또는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지혜의 날개를 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미리 생각하는 신으로 지혜의 신이듯, 지혜는 무조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혜는 생각하며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일의 전체를 그려보는 것, 거기에 지혜가 있다. 마음에 구체화한 청사진을 그려보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설레고 흥분하게 만드는가. 그러면 그 일은 자체가 즐겁고 도전할 의욕을 갖게 할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활동하는 올빼미, 그냥 일상처럼 별 생각 없이 먹이를 찾아 숲을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찾아 날아가는 올빼미는 얼마나 멋진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생각 없이 하느니보다 어떤 꿈이든 의미를 부여하며 하는 일은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어준다.

 

다음으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 날갯짓을 시작한다.” 이 말을 이제 날갯짓에 의미를 더하여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지혜의 날갯짓은 지혜가 생기는 시간으로 보면 지혜가 탄생하는 시간이다. 황혼 무렵에 생긴다는 지혜에서 황혼 무렵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휴식의 시간과 활동의 시간의 중간의 시간인 황혼 무렵, 삶의 긴장이 잦아든 휴식의 시간, 이 시간엔 단순히 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구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일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쉼의 시간과 활동 시간의 중간에 걸친 짧은 시간, 그 시간에 지혜는 생긴다는 뜻이다. 완전한 휴식에 든 시간, 이완된 시간 속에서 지혜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막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벌일 활동을 미리 그려보는 그 짧은 시간에 약간의 긴장을 더할 때 지혜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온전한 이완과 집중한 활동 시간이 아닌 앞의 일을 미리 생각하면서 맞는 약간의 설렘, 약간의 긴장이 지혜를 불러준다.

 

이 아침은 우리에겐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날갯짓의 시간이다. 어제의 일은 어제로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어제는 이제 후회의 대상이 아니다. 반성의 대상일 뿐이다. 어제의 후회는 아직 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반성은 어제를 거울삼아 본받을 것은 본받고 시행착오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이른다. 어제를 반성하며, 아침에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려는 이 순간, 이 아침이 지혜를 얻는 시간이다. 하루하루를 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이 작은 긴장, 이 작은 설렘, 이 작은 그림들이 나를 지혜의 세계로 안내한다. 지혜로운 활동 하나 하나는 순간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니 매순간이 행복하다.

 

밤에 활동하는 일반적인 올빼미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운 올빼미로 생활하기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낮에 활동한다.’는 문장을 ‘지혜로운 나는 아침에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의 일을 구상하면서 일을 시작한다.’로 오늘을 연다면 오늘 하루는 적당한 설렘과 긴장으로 즐거운 하루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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