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8- 나는 지혜로운 가요?

영광도서 0 430

그리스신화에서 여신 아테나는 제우스의 맏딸이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에 선보이는 시간의 자리는 제우스의 자녀들 중 아주 뒤에 자리한다. 제우스가 여러 아내를 거쳐 마지막 정실로 정한 헤라와의 사이에서 적어도 둘째아들이 성장한 후이다. 제우스의 둘째아들이 제우스의 부탁을 받아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자 그때 완전무장한 아테나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야기인 즉, 제우스는 사려와 분별의 여신 메티스를 사랑한다. 그런데 신탁에 따르면 제우스와 그녀와의 사이에선 우선 큰딸이 태어나니 그녀는 아주 훌륭한 여신이다. 그다음 둘째는 아들인데,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할 능력을 안고 태어날 것이라는 신탁이다. 때문에 제우스는 자신보다 월등한 신이 태어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움을 인식하고 이를 막으려 한다. 하여 메티스와 교제를 끊으려 하나 이미 임신 중이다. 이미 첫딸은 만들어졌으니, 더는 아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교제 중인 아내 메티스를 통째로 삼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 아내를 하나 둘 셋...적어도 일곱 여자를 거치고 나서 헤라를 정실로 맞는다. 그런 어느 날 무척 머리가 아프다. 하여 둘째아들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니 도끼로 머리를 쪼개 달라 한다.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힘차게 내려친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주 아름다운 여신이, 갓난애가 아닌 완전무장한 처녀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날 듯이 솟아오른다. 그녀가 아테나 여신, 곧 지혜의 여신이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아테나 여신, 그러나 다시 보면 아테나는 갓난애로 나온 게 아니라니까 논리적으로 설득 가능하다. 이미 태어났으나 다만 제우스의 몸 안에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동안 아버지의 몸 안에서 이미 자라 완전무장을 갖춘 성인이 되고나서 태어났다니까.

 

아테나, 그녀는 지혜의 여신으로 신화는 지혜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생성과정을 거쳐 선보이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지혜는 사려와 분별과 같은 세밀하게 세상을 보는 시야와 세상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의 결합, 일부가 아닌 전부를 받아들임에서 잉태한다. 곧 어떤 무엇을 보든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게 나누어 보는 분별력으로 얻은 지식의 총체를 통째로 받아들인, 전부를 아는 온전한 지식을 갖춤이 지혜의 씨앗이다.

 

그렇게 안착한 지식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발아를 시작한다. 지식이 잠재한 능력으로 자리하면서 지식을 기반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누구나 아는 만큼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육안이되, 그것을 보는 크기와 넓이는 마음의 눈인 심안이 결정한다. 세상을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촘촘하게 보는 눈이 사려분별의 눈이다. 그러니까 지식은 우선 세상을 꼼꼼하고 촘촘하게 보는 관찰의 눈으로 얻는 정보를 말한다.

 

이렇게 얻은 정보는 또 정보를 낳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또 본다. 그렇게 세상과 마주하면서 얻은 정보들은 경험에 그대로 반영된다.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 적용하면서 경험을 늘려간다. 지식을 적용하면서 경험하는 것들, 그 경험은 다분히 성공의 경험만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의 경험, 시행착오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지식과 세상과의 만남 또는 충돌을 충분히 하고 나면 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자란다. 어떤 세상을 만나도 능히 헤쳐 나갈 자신감으로 무엇에든 맞서고 싶은 도전정신이 넘친다. 그럴 때 지혜는 발현된다.

 

그렇다. 지식은 지혜의 씨앗이다. 그러한 지식이 경험과 만나는 순간들이 지혜의 발아이다. 지혜란 추상적으로 머릿속으로만 알던 것들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얻는 삶의 문제해결력이다. 때문에 지식은 어떤 일 하나를 처리하는 경험능력이라면, 지혜는 그렇게 얻은 경험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 다른 유사한 것이나 아니면 전혀 다른 것에도 적용할 줄 아는 응용능력을 말한다. 하나를 알면 열에 응용하는 능력, 하나의 원리는 어디에든 통하는 원리임을 인식하는 능력이 지혜이다.

 

지혜는 이처럼 경험을 통한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몸속에서 제우스의 눈으로 세상을 아주 오랫동안 보면서 완전무장을 준비하였듯이 지혜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 지혜롭게 살아간 이들이 남긴 유산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그 현장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관찰하고 대조하면서 얻을 수 있다. 독서로 얻는 혜안이 그것이다. 세상 모두를 경험하기엔 인간에겐 너무 시간이 모자란다. 때문에 신은 세상에 작가들을 보낸다. 작가들이 스스로 경험했거나 관찰하고 성찰하고 통찰한 삶의 모습들을 읽음으로써 지혜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를 완전무장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는다. 그래서 나는 지혜로 완전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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