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9-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황혼녘을 읽다

영광도서 0 630

올빼미는 밤에 활동한다, 이 문장은 단순히 올빼미의 생태를 설명한 문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문장을 헤겔은 올빼미에다 ‘미네르바’를 덧붙여 경험지식과는 다른 상징적인 지식으로 의미를 바꿈으로서 다른 뜻으로 읽게 한다. 로마신화의 미네르바는 그리스신화의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 해당하는 지혜의 여신이기 때문에, 더는 단순한 올빼미라는 조류의 의미를 넘어 지혜란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때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갯짓을 시작한다.’라고 문장을 읽는다면, 이는 지혜의 탄생이자 지혜의 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밝음의 순간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라야 지혜가 발현된다, 어둠 속일수록 어둠을 밝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밞음 가운데에선, 낮과 같은 이성의 시기엔 굳이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 그와는 달리 오히려 혼돈스러운 시기, 앞을 볼 수 없는 때, 그래서 무엇을 무엇이라고 확연하게 정의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혼란의 시기에 정작 필요한 것이 지혜요, 그런 환경 속에서 지혜는 빛을 발한다. 다른 존재들은 잠들거나 침묵에 잠길 때, 할 말을 잃을 때 지혜로운 존재는 오히려 그때에 능력을 발휘하며 세상의 문제를 직시한다. 지혜는 혼돈, 혼란,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밤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반면 지혜의 탄생 이전이라고 상정할 수 있는 낮은 밝음의 시간이요, 피상적인 혼란은 없는 시간이다. 노동의 시간이다. 올빼미와 같은 야행성 존재가 아니라도 엄청 많은 존재가 활동하는 시간이다. 이때에 지혜는 활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행동하지 않던 올빼미가 밤에만 활동한다는 것이니, 올빼미의 존재 가치는 낮에는 의미가 없다. 낮은 여러 존재의 활동의 시간이요. 노동의 시간이다.

 

문제는 황혼 무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중요한데, 이 문장에서 황혼 무렵은 지혜가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디. 전술한 낮과 밤은 문장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황혼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 속에서의 지혜의 모습을 유추한 것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황혼의 의미이다. 황혼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원초적으론 단순히 하룻날의 저물녘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남과 밤의 경계 즈음이다. 그렇다면 지혜가 탄생하는 순간은 우선 낮과 밤사이의 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지혜는 저녁 무렵에 하루를 정리하면서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이를 보다 상징적으로 접근하면, 낮의 노동과 밤의 휴식 사이의 시간으로 해석 가능하다. 밤에 휴식에 들기 전에 날갯짓을 하듯이 낮 동안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사람, 하루를 정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지혜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낮과 밤이 교대하는 것을 일상으로 넘기지 않고 하루를 되새김하며 정리하고 나서야 휴식에 드는 사람만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를 인생에 비유한 것으로 읽는다면 말 그대로 황혼은 노년이다. 흔히 젊음은 열정의 시기요, 도전의 시기라 한다면 노년은 마무리의 시간이요, 쉼의 시간이다. 일생을 보내면서 일에서 놓여나면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간인 중년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람은 지혜를 얻는다고 해석 가능하다. 청년은 힘으로 세상과 씨름한다면 노인은 그만한 힘이 없지만 지혜의 힘으로 청년을 능가할 수도 있으니, 그런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노인은 곧 지혜의 상징이요, 청년은 열정의 상징이다. 앞뒤좌우를 살피며 살아야 하는 중년을 살고 나서 이제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필요한 것이 지혜란 뜻이다.

 

이처럼 황혼 무렵을 시간적인 관점에 중점을 두었다면, 공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황혼 무렵을 낮과 밤사이의 시간 대신에 밝음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사이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전술한 것처럼 이는 지혜로운 자는 밞음의 세계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은 지혜란 등불처럼 밝음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필요하다는 뜻이다. 등불을 낮에 켜놓은 들 의미가 없듯이 지혜 역시 그러하다는 뜻이다. 등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어둠이 와야 진정한 자기 가치를 발현한다. 이 시대가 어둠과 같다면 바로 이 시대는 지혜로운 사람을 부른다. 더 어둡게 하는 사람들은 침묵하고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나올 시기이다. 지금 우리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그 존재의 날갯짓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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