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34- 육쪽마늘과 설날의 의미

영광도서 0 435

설날/ 최복현

 

 

여섯 쪽이 다닥다닥 붙어 사이 좋게 한 집 안에 살아서 육쪽마늘이란 이름을 얻은 잘 여문 때깔 고운 마늘 한 통처럼, 삶이 추운 날에 함께 품어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삶이 고픈 날에 적은 것 나누어 넉넉한 마음을 품고, 삶이 기쁜 날에 서로 얼싸 안아 기쁨의 구름 위로 오르며, 그래 기쁘니 웃고. 슬픔도 함께하여 웃음으로, 기쁨도 함께하여 다정도 하더라, 의리도 좋더라, 다복도 하더라.

 

힘들어도 다닥다닥 붙어 살던 내 다정한 형, 동생, 누이들. 무소식이라 희소식이란 말도 안 되는 저잣소리로 저를 합리화하며 서로 무심하게 멀리 떨어져 서로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되어 살던, 이웃사촌만도 못하게 서로 정을 잊고 살던, 그저 점점이 떨어져 사이를 벌리며 살던 내 피붙이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란 끈으로 이어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을. 굳이 섬처럼 살 수 있으랴. 그래도 설날이란 구실이라도 빌어 이 날 하루만이라도 육쪽마늘처럼 한 집에 다정하게 다닥다닥 붙어서 섬이 아니었던 시절의 옛이야기라도 나누면 어떠랴. 더는 서로가 섬이 되어 거리를 재지 말고 섬과 섬 사이에 형제자매의 정으로 끊어지지 않을 다리 하나 놓으면 어떠랴.

 

설날인 이날만이라도!     

 

 

 

설날과 육쪽마늘/ 최복현

 

 

겉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여섯 쪽, 각각 껍질을 입고 있다. 전체로 보면 하나지만 안에서 여섯 쪽으로 각각 존재한다. 겉껍질에 비해 훨씬 얇은 속껍질로 서로 몸을 맞댄 쪽들이 서로를 의지하여, 서로 딱 달라붙어 사이좋게 모여 산다. 여섯이면서 여섯 모두 중심에서는 끈끈하게 몸을 맞대고 산다. 물론 서로 맞붙어 있지만 다른 속, 다른 씨를 품고 있으니 여섯 쪽은 각기 서로 다른 미래를 예견한다. 나중에 이들은 밭에 심긴다. 그러면 각기 다른 싹을 내고 또 다시 한 통 속에 여섯 식구를 거느린 육쪽마늘이 된다.

 

마치 한 가족처럼 살다가 각기 출가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네 인간을 닮았다. 우리와 다른 게 있다면 마늘은 서로 몸을 맞대고 완전한 한 통으로 산다. 다만 서로 나뉘어 다른 삶을 살기 전까지는 서로 의지하며 잘도 산다. 그런데 우리는 사사로운, 아니면 중요한, 중요하다고 해야 돈 문제거나 자존심 문제로 서로 등을 돌리고 몸을 가까이 하는 것은 물론 말을 섞는 것까지도 마뜩찮아 하며 다시 안 볼 것처럼도 산다.

 

그럼에도 부모가 생전에 계시면 부모 입장 생각하여 억지로 만나긴 한다만 속은 좋을 리 없다.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미움은 왜?”라는 말은 쉽지만 미움을 마음에서 쫓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움을 품으면 미움을 품은 내가 속병을 앓으니, 마음이 찜찜하니 결국 내가 손해다. 그러니 용서가 가장 좋은 약이다.

 

언젠가부터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피는 물보다 진하기는커녕 오염된 피는 없느니만 못한 것처럼, 이웃보다 훨씬 못한 원수처럼 지내는 가정들이 한둘이 아니다. 마치 남북관계는 풀려고 애쓰면서 북보다는 가까운 것이 남남에 함께하는 형제들일 텐데도 남북관계보다 더 원수처럼 대하는 정치권처럼, 우리의 가정들도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각기 다른 씨앗을 갖고 각기 다른 미래를 꿈꾸며 살지만 한 통 속에서 사이좋게 몸을 맞대고 사는 육쪽마늘처럼, 우리 모두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화해하며, 피는 물보다 진함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날이 그리 많은가. 우리가 만날 날이 그리 많은가. 어쩌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인 우리, 이번 설을 계기로 서로 화해하면서 피의 따뜻함을, 피를 나눈 뜨거움으로 서로 포옹하는 좋은 날, 설날이면 좋겠다.

 

설날, 서로 눕거나 엎드려 미워하기보다, 질투하기보다, 서로 설 날이다. 서로 사이좋게 설 날이다. 서자! 서자! 사이좋게 서로 일어서야 할 설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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