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47- 비밀과 비결 사이

영광도서 0 482

다자이 오사무는 <사양>에서 다른 짐승들은 갖지 못했으나 인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비밀이라고 한다. 비밀, 바보가 아니라면, 적어도 10세 이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밀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둘째로 치고, 비밀이 있다는 전제는 다른 말로는 적어도 100% 진실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그러니까 비밀의 다른 말은 거짓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내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묻는다면, 그런데 그것을 알리는 순간 첫째는 나에게 해가 된다면 나는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둘째는 내가 그것을 밝히면 누군가에게 해가 된다면 나는 그것을 말하기를 망설일 것이다. 셋째는 나를 믿기 때문에 내게 진실을 말한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그런데 그것을 밝혀야 할 상황이라면 더군다나 그것을 말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나는 거짓을 말한다. 그 순간 나는 비밀을 갖는다.

 

비밀이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며 살 수밖에 없다. 소위 선하다, 착하다, 사람 좋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더 많은 비밀을 갖고 산다. 왜냐하면 인정받는 사람들에겐 누구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저러한 비밀을 품는다. 그가 지켜주는 비밀, 그는 더한 믿음과 신뢰를 얻는다. 그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럴수록 그는 더 많은 비밀을 품고 살 수밖에 없다. 반면 비밀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비밀을 말하고 싶어 참지 못한다. 그에게 들어간 비밀은 금방 새나간다. 그때부터 그에겐 누구도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얼마나 비밀을 갖고 있느냐의 척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 다란 사람에게 비춘 내 모습이 어떠하냐의 척도이기도 하다.

 

비밀이 아니면 거짓이 때로는 진실보다 아름다울 때도 많다. 때로는 비밀을 끝까지 지키다 가슴에 묻은 채로 세상을 마감하더라도 아름다운 비밀 또한 있다. 모든 비밀이 세상에 밝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밀이란 밝히면 누군가는 해를 입는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인간은 비밀 없이는 살 수 없다면, 비밀을 갖는다는 것은 필연이라는 반증이며,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란 의미이다. 오히려 그러한 비밀 하나 없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단순한 짐승에 불과하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굳이 밝히지 않음으로써 나에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그 비밀은 지키는 것이 낫다.

 

반면 밝혀야 할 비밀도 있다. 누군가에게 비록 해가 될지라도, 그 누군가가 정당한 일이 아닌 일을 했다, 그 일 때문에 사회에 피해가 간다면, 그 일 때문에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그러한 비밀은 지켜야 할 가치보다 밝혀야 할 가치가 크기 때문에 그것은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으니 밝혀야 한다. 비밀과 진실 사이, 결국 가치의 문제이지만 지켜야 할 비밀은 지키는 것이 선이고, 밝혀야 할 것은 밝히는 것이 선이다. 비밀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 때문에 굳이 비밀을 갖고 산다고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물론 비밀과 비결은 구분해야 한다. 이를테면 비밀은 지킬수록 좋고 비결은 없을수록 좋다. 무언가를 터득해 안 좋은 방법이나 좋은 지식은 혼자 갖고 싶은 마음, 혼자 누리고 싶은 마음이야 없지 않지만, 비결은 나누어쓸수록 좋다. 나름 터득한 방법들, 물론 어렵게 얻는 것들이자 여러 번 시행착오 끝에 또는 제법 많은 희생을 치루고 얻은 무엇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감춰두고 혼자만 누리거나 두고두고 쓰고 싶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밝힐수록, 타인에게 전할수록 좋다. 혼자 누리거나 혼자 쓰다가 어느 순간 그 모두를 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똑같은 시행착오, 그 이상의 시간을 소비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밀은 감추고 비결은 밝혀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라면 무덤까지 가져가되 누군가에게든 득이 될 비결을 갖고 있다면 오늘이 가기 전, 잠들기 전에 밝히는 게 좋지 않으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비결이라고 혼자 감춰두고 웃고 있는 너, 그냥 알려주라고. 비결이란 남에게 말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말하고 나면 다른 비결은 또 생기게 마련이라고. 지키려는 너는 그 하나로 평생 울궈먹다 말 테지만, 뭔가를 터득하면 그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 보라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발견해 내잖아. 비결이란 샘과 같아서 퍼내면퍼낼수록 자꾸 솟아나는 거야. 믿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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