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 엄마와 이 잡기
잃어버린 시간의 다른 말은 잃어버린 기억이다. 하긴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볼 수도 없고 냄새로 맡을 수도 없다. 만질 수도 없다. 다만 사건과 사건 사이, 이를테면 기억과 기억 사이를 메우는 것을 시간이라 부를 뿐이다. 알고 보면 우리 삶은 물결이 밀려오되 사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촘촘하게라기보다 한 덩어리로 뭉쳐 있어 그냥 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듯이 우리 삶 역시 따지고 보면 한 덩어리로 있어서 시간을 구분할 수 없다만, 다만 인간의 기억의 한계가 있어 기억하느니 사건 단위로 기억하니 시간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중간 기억을 잊고 굵직굵직한 사건만 기억한다. 물론 각자의 기준이긴 하다만. 예컨대 감각적으로 중요하다, 끔찍하다, 아주 좋다 등,
직감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사멸된다.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엔 아무리 촘촘하다 한들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니까 시간이 흐르는 것일지, 시간이 흐르니까 내가 자란 것인지, 그것을 어찌 알랴. 시간이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다 치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기억들은 손바닥에 가득 잡은 모래알이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듯 기억들도 그렇게 빠져나간다. 그렇게 시간 속에 나의 삶들도 빠져나간다. 그렇게 사라지면 더는 나도 없고 사건도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야 그때는 이러했다고 추억하거나, 그때를 살지 못한 나의 후예들은 긴간민가하면서도 그때는 그랬구나 하고 생각할 테니까.
정확하게는 기억 못한다. 상황을 기억 못한다가 아니라 이때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지 후인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딱히 어느 한때가 아니라 어렸을 적엔 늘상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이란 무리들이다.
몸이 오염되지 않아서인지 이가 무척 많았다. 때문에 수시로 여기 저기 몸을 긁는 적이 많았다. 머리에 사는 놈들은 머리 색깔을 닮아 까만 놈들이라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놈들은 영리하게 위장을 잘했다. 엄마는 한수 위셨다. 아주 고운 참빗으로 우리 머리를 훑으셨다. 그러면 숨어 있던 검은 놈들이 위장을 잘하고 숨은 간첩들처럼 포위망에 걸려 잡혀 나왔다. 놈들은 꼼짝없이 화롯불에 던져졌다. 그러면 인간을 파먹고 산 죄로 지옥불에 떨어지듯 최후를 뚜두둑 소리를 내며 타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놈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후손들을 머리카락 사이 틈틈이 낳아놓았다. 그걸 이라고 부르지 않고 서케인가 써개인가로 엄마는 부르셨다. 놈들을 아예 박멸한답시고 엄마는 우리 머리에 디디티를 뿌리셨다. 디디티란 나중에 알았지만 살충제였다. 허연 살충제를 머리에 허옇게 부었지만 용케도 별탈없이 우리는 살아남았다.
위장에 뛰어난 놈들은 몸에 붙으면 하얀 색으로 살아남았다. 수시로 옷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십상이었다. 밤이면 엄마는 요놈들을 처단하는 게 일상이었다. 미연에 씨를 말리려고 엄마는 이를 찾아 손톱으로 눌러 사형에 처하셨다. 그렇게 배워 나도 놈을 사형시키려면 놈은 죽을 때 ‘툭’이랄까 ‘뚝’이랄까 아주 괜찮은 소리,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죽었다. 놈들의 시를 말리려고 엄마는 옷 솔기에 낳아놓은 이의 씨들을 이로 짓이겨 죽이실 때면 알 터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잘 안 터지는 놈들은 등잔불에 대고 지져서 씨를 말린다고 말렸다.
그럼에도 놈들은 어떻게 씨를 퍼뜨렸는지 우리는 이는 몸에서 나오는 거로 믿었다. 특히 겨드랑이가 가려울 때가 많았는데, 어떤 때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움켜잡으면 이가 한 움큼 잡혀 나올 때도 있었으니까.
더럽다 생각하면 손톱에다 놈들을 터쳐서 피가 나는 꼴을 보기 어려우셨을 텐데, 옷 솔기에 이의 알들을 이로 짓이기는 게 더러워서 그렇게 못하셨을 텐데, 엄마는 기꺼이 하셨다. 알고 보면, 다시 생각하면 그것은 모정이었다. 모성애였다. 엄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그런데도 자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기적이었다.
지금도 이와 얽힌 사건들은 생생하다. 내 몸이 얼마나 컸는지는 기억에 없다만, 화롯가에서 옷의 솔기를 뒤져가면서 이를 잡으시던 엄마, 머리를 빗겨 이를 체포하시던 엄마, 그 더러운 이의 알들을 이로 짓이기시던 엄마, 디디티를 머리에 발라주시던 엄마, 마치 활동사진들이 장면과 장면이 서로 잘린 것처럼 떠오른다. 나와는 32년 차이의 엄마, 그때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예뻤는지, 젊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엄마의 자식들을 위한 몸짓들만 기억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모정과 모성애를.
지금은 이를 잡을 일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려나. 아주 못되어 자식을 버린 엄마가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늘나라에서 좋은 곳에 신께서 살도록 하셨으면 좋겠다. 필연이기 하지만 다시는 뵐 수 없는 엄마, 가끔 그립다. 혼자 걷는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섞어 불러보곤 하는 이름 “엄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