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 기다리던 설날

영광도서 0 492

플라토닉 러브가 있다. 플라톤의 이름을 딴 플라톤 식 사랑을 이른다. 흔히 육체적인 사랑 또는 에로스 적 사랑에 반하는 사랑을 지칭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딱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이성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의 사랑으로 이데아에 대한 사랑이다. 플라톤은 한때 그리스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대행이라 여겼다. 그만큼 그는 여성을 향한 사랑을 이상으로 삼지 않았다. 때문에 플라톤이 말한 사랑은 이성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이데아에 대한 사랑이었다.

 

인간은 신에게 쫓겨나기 전에 낙원에 살았다, 그 낙원은 아주 아름다운 총천연색의 세상이었고, 아주 아름다운 만물이 거기에 있었다고, 그것을 플라톤은 이데아라 불렀다. 그런데 인간이 지상으로 쫓겨나면서 망각의 강인 레테를 건너왔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모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여 신은 인간에게 이데아에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을 보라고 지상에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이 자연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이데아를 더는 볼 수 없고, 이데아의 그림자인 자연을 보며 살고 있으니, 잃어버린 낙원의 이데아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사랑이 곧 플라토닉 사랑으로, 그 사랑 법을 동굴의 비유로 설명한다. 동굴에는 아무런 빛이 없다. 때문에 동굴 안에 모든 것은 그냥 칙칙하다. 어쩌다 누군가 동굴 밖을 발견한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천연색의 세상, 그는 밖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며 누릴 수 있다. 그는 동굴 깊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 들어가면 다시 그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누리지 않고 다시 볼 수 없을 풍경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천연색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고 들어가는 사랑, 이 또한 플라토닉 러브라 할 것이다. 그러니 플라토닉 러브란 이데아를 향한 사랑이자, 이데아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사랑이다.

 

그런데 내가 보여주는 풍경은 천연색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자 같은 흑백사진들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칙칙하지만은 않은 정겨운 풍경이다. 모든 생생한 아픔이나 슬픔, 고통은 시간이 쓰다듬으며 지나가면 상처는 모두 아물고 애잔한 풍경으로 남는다. 때문에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

 

설 때쯤 되면 아버지는 10리가 넘는 고갯길을 내려가셨다. 거기가 면소재지 오일장이 열리는 도관리였다. 우리 집에서 좁다란 밭둑길을 나서다 신작로에 합류하여 언덕길을 올라서면 굽이굽이 비포장도로 신작로를 따라 저 만치 아래에 면소재지가 있었다. 그렇게 장에 간 아버지는 아이들 몫으로 옷 한 가지씩 사오셨다. 한 벌도 아니고 바지면 바지, 윗옷이면 윗옷 한가지씩이었다. 어느 설날 나는 코르덴바지를 선물 받았다. 너무 신났다. 아끼느라 조심스럽게 입었다. 아무 때나 입지 않고 설날 동네 어른들께 세배하러 갈 때만 입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논에 나가 썰매를 탔을 뿐인데 엉덩이 쪽이 찢어졌다. 그것도 그냥 칼로 그은 것처럼 찢긴 것이 아니라 헝겊을 덧대지 않으면 입지 못할 만큼 헤졌다. 엄마한테 혼날까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혼을 내지는 않으셨다. 대신 다른 헌옷에서 오려낸 헝겊으로 엉덩이 부분에 덧대어 꿰매어 구멍을 막아주셨다. 그렇게 설빔은 설날 하루만 새 옷으로 살고, 헌옷으로 겨울 동안 나와 살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엄마가 혼내지 않은 뜻을 알아차렸다. 오히려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다. 제대로 된 옷이 아니라 아주 값싼 싸구려 옷들 중에서 골라 사온 옷들이었으니까. 물론 실제로 40원짜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돈으로 40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 어른들 하루 품값이 500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싸구려 옷이었다. 내가 잘 못 입어서가 아니라 싸구려 옷은 그야말로 낡은 옷이었거나 잘못 만들어진 옷들이었던 것 같다.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싸구려 옷들은 사나흘 입으면 헤지고 찢어지기 일쑤였다. 내용으로만 보면, 그때를 상상하면 비참할 듯싶지만 그때는 나나 누구나 그걸 슬프게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최상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때가 싫지는 않다. 다시 그런 날이 온다면 글쎄다 싶지만 그때는 모두 그랬기 때문인지 지금은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어린 그림으로, 흑백사진으로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플라토닉 사랑처럼 그 시절을 누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 시절의 풍속도는 우리가 걸어온 현실이었으니, 잊기보다는 기억하고 싶다. 아니 추억하고 싶다. 우리의 모든 삶 하나하나는 흑백이든 칼라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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