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2- 보리밥과 단오절의 취떡의 추억
“개똥이네 집에서도 꽁당 보리밥,
소똥이네 집에서도 꽁당 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예나 지금이나 행정의 중심이 탁상공론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현장을 면밀히 살핀 다음 어떤 정책을 내리기보다 한두 건 목격하면 그걸 아이디어라고 실시하는 건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예까지 왔건만 몇몇 목소리 큰 곳을 표본으로 삼는 행정편의주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사가 정확히 생각은 안 난다만 대략 이런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소위 혼분식 장려운동이 당시에 있었다. 누구를 보고 이런 운동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만 혼분식 운동은 우리와는, 아니 우리 마을 전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아마도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보리쌀 섞어 먹기 운동을 한 것 같은데, 우리 마을 전체에서 매번 쌀밥만 먹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두촌면 괘석리에 있었으니, 내촌면과 두촌면을 가르는 강을 건너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내촌면 광암리에 살았다. 때문에 학교엔 두촌면 괘석리에서 오는 아이들과 내촌면 광암리에서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생 수는 400여 명 가까웠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윗선배들은 두 반으로 140여 명, 우리 학년은 50여 명, 밑에 학년은 70여 명, 그 밑에 학년이 110여 명, 확연하게 세 살 터울의 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학교에 도시락으로 쌀밥을 싸오는 집은 우리 반에서 딱 세 집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 아들, 괘석리 이장 집 아들 그리고 우리 동네 허씨네 아들 셋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황씨네와 허씨네 두 집만 쌀밥을 먹었다. 하등 혼분식운동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쌀밥은커녕, 보리밥은커녕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도 전부가 아니었는데, 보리쌀도 구경도 못할 형편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노래를 의무적으로 부르곤 했다. 우리 사는 동네에선 보리농사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고지대였기 때문에 맥류 재배를 한다면 보리 대신 밀, 호밀이나 밀만 가능했다. 그러니 보리밥만 먹을 수 있다면 먹을 만 했고, 쌀밥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때문에 쌀밥 먹는 날들을 기다리거나 명절이 올 때를 기다렸다. 명절엔 떡을 해서 먹을 수 있었으니까. 설에는 옥수수떡이나 좁쌀떡을, 추석엔 송편을 단오절에는 취떡을 먹었다. 이 중에서 단오절이 좋았다. 이때는 거의 모든 집의 떡이 같은 편이었다. 공통적으로 찰조로 떡을 만들었다.
찰조를 주재료로 산에서 채취한 떡 취를 삶아서 섞어서 만든 취떡이다. 시루에 좁쌀을 밥하듯이 찐다. 채취한 떡취는 삶는다. 이렇게 하여 찐 좁쌀과 삶은 떡취를 떡귕에 담는다. 처음엔 취와 좁쌀이 따로 놀지만 내리치는 떡메에 으깨어지면서 둘이 서로 섞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차 노란 좁쌀은 떡취의 색을 받아들이면서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더 많이 치느냐가 찰지느냐 덜 찰지느냐를 좌우한다. 때문에 단오절이 오면 동네 청년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떡을 쳐준다. 파롬한 취떡, 찰진 것이 아주 맛이 있다. 때로는 쌀을 조금 섞기도 하는데 찹쌀이 아니라면 떡이 다 만들어지도록 절대로 으깨지지 않고 마치 흰 소금이나 흰 모래알처럼 점점이 박힌 채로다. 그런 떡이 시각적으로도 맛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도 아주 맛이 좋다. 이제는 다시 먹을 수도 없는 취떡, 졸깃졸깃하고 찰진 취떡, 생각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개똥이네 집도 아니고 소똥이네 집도 아니어서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맛을 볼 수 없었던 그 시절, 어느 집을 막론하고 같은 재료로 같은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단오절, 농삿일을 잠시 쉬면서 그날만은 모두가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며 정겹게 모여서 정담을 나누던 어른들, 서낭나무에 맨 그네를 타러 모인 동네 젊은이들, 모처럼 먹는 취떡, 잔잔한 동화처럼 고향생각과 함께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 재연하는 프로그램은 다시 없을 테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살라면 거부하겠지만, 어쩌다 하루쯤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