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86- 협의의 교육의 의미

영광도서 0 473

교육하면 제일 먼저 학교를 떠올린다. 학교란 특수한 계획과 의도 아래 형식적인 체계를 갖춘 기관을 이른다. 이를 형식적 교육, 즉 formal education이라고 한다. 곧 <좁은 의미의 교육>이다.

 

형식이란 다른 말로 일정한 틀을 의미한다. 때문에 일정의 조건과 제한을 전제한다. 이를테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6하 원칙의 기본적인 질문에 상응하는 제 조건들을 기본 질문으로 하는 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형식적인 교육의 대명사라 할 학교는 학령이 있게 마련이고, 물론 사회에 따라 연령제한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적절한 연령기준은 불가피하다. 이처럼 피교육자의 연령에 따른 언제의 질문, 지역에 따른, 또는 지역에 따라 다른 교육이라는 어디서의 질문, 목적에 따른 무엇의 질문, 방식에 따른 어떻게의 질문, 이러한 여러 질문에 부합하는 부류의 형식교육을 학교가 맡는다. 이러한 것들을 전제로 그 교육의 목적이 왜의 질문이라 하겠다. 형식교육은 어떤 교육이든 교육의 중심 목적이 있으니 그것이 곧 왜의 질문이다.

 

이처럼 형식적인 교육은 일정한 틀이나 범위가 있기 때문에 수혜자가 제한을 받는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나 그 교육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배우는 내용도 시간과 공간, 성과 연령 등의 조건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무엇보다 제 내용을 잘못 선정하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편파적인 내용이라든가 잘못된 내용, 특정 정파에 치우친 교육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형식적 교육이란 일부 소외 계층이 있을 수 있다는 점, 틀을 잘못 잡으면 사회적인 파장이 일어나고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형식적 교육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 형식적 교육은 그야말로 형식에 치우쳐서 마치 공장이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내듯이 닮은꼴들만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머리만 키워주는 게 아니라 보다 넓은 마음을 만들어주어서 더불어 삶, 더불어 삶의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행복을 구가하는 데 일조 하는 사회성원을 길러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을 노종하고 있다. 교육이 있는 곳은 교육이 없는 곳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들,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들, 진정한 자유를 알고 자신의 견해를 옳게 가지고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한지 묻고 싶다.

 

교육은 우리를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요즘은 형식교육도 평생교육으로 확대되고 있다. 누구랄 것 없이 누구나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는다. 형식적인 교육이지만 엄격한 틀이 덜한 평생교육은 이젠 평생학습으로 진화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오늘도 남녀노소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 교육의 장에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선생으로 또한 학생으로 직접 참여한다. 수많은 교육들, 그 모든 교육들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이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머리만 비대해지는 그런 교육에 익숙해지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예술을 중시하는 넓은 교육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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