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90- 평생학습, 스승과 꼰대 사이
평생교육과 평생학습, 이 둘은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어감도 그렇지만 의미도 다르다. 교육은 어느 정도 타율적인, 또는 관주도의 의미일 듯하고, 학습은 스스로 또는 자율적은 의미인 듯하다. 때문에 요즘은 평생학습의 시대라 한다. 스스로 스승을 찾는 시대를 이른다. 스스로 좋아서 배우려 하고, 일상에서 스승을 만난다. 굳이 어떤 기관에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본받을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의 언행을 배우면 그것이 곧 평생학습일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 자세엔 겸손이 절대조건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예컨대, 수년 전에 도봉수필반에서 공부하는 이들 대여섯 분과 도봉산 발치에 갔었다. 호젓한 곳에 자릴 잡고 대화를 나누려는데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세 분이 우리에게서 불과 대여섯 발자국 거리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제법 큰 카세트를 내려놓더니 노래를 튼다. 무척이나 소리가 크다. 네 분이 노래에 맞추어 노인들 특유의 느린 맞춤을 춤을 춘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하여 “노래는 좋은데 소리를 조금만 줄여주시면 안 될까요?” 정중하게 내가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 “이 자리는 우리가 15년 전부터 차지한 곳이니 다른 데로 가요!”라며 짜증을 냈다.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싸운 들 우리만 추하겠다 싶어 자리를 피했다. 속으로는 ‘늙기가 두렵다. 저렇게 꼰대 될까 봐’라고 생각하면서.
이와는 달리 우리 수필반에는 멀리서 수필을 공부하러 오시는 원로 목사님이 한 분 계신다. 같은 서울이지만 수필반은 도봉문화원에 있으니 거의 서울 북쪽 끝이고, 목사님이 오시는 곳은 온수동이니 서울의 서쪽 끝이니 멀긴 멀다. 그렇게 먼 거리지만 목사님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참석하신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으신다. 내가 강의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까지 하신다. 배우는 즐거움에 오히려 내게 감사하다며, 평생을 교인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사셨다며, 이제는 베풀며 살겠다 시며, 내게 매번 점심을 사 주신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그 말씀을 풀어서 글 쓰는 방법을 강의하면 그것도 잘 기록하신다. 그러면서 평생 목회를 하셨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해석을 이제야 배운다며 무척 기뻐하시며 칭찬하신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분야, 어쩌면 전문가라 자부할 분야에서 마저도 늘 배우려는 자세, 나는 목사님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겸손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비록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삶을 배운다. 나에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배운다. 목사님이야말로 내 삶의 아름다운 스승이시다. 멋진 스승, 내 삶의 롤 모델이시다. 언제가 될지 나 역시 무엇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삶으로, 언행으로 본이 되는 누군가에겐 삶의 스승이고 싶다.
삶의 스승의 길, 그 방법은 겸손이 아닐까 한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면 언행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대우나 받으려 하고 권리 주장이나 하려 한다. 그렇게 나이 들면 그는 꼰대 소리를 듣는다. 반면 남을 배려하는 법을 삶에서 익혀 몸에 밴 이들은 이미 언행에서 겸손이 배어나온다. 이 겸손함이 스승의 길이다. 겸손하게 세상을 보면, 겸손으로 사람을 보면 세상엔 아니 일상에서 많은 스승을 만난다.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배울 점들이 참 많다. 그러니 내가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모든 이들이 나의 스승이다. 내 삶의 스승들, 나는 오늘도 스승들을 만나러 세상으로 나간다. 꼰대로 나이 드는 게 아니라 스승되는 법을 배우며 나이 든다 생각하니 나이를 들게 하는 이 시간들이 그런 대로 즐길 만하다. 나는 꿈꾼다. 누군가의 삶의 롤 모델, 삶의 스승이 되는 내 노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