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99- 멋쟁이 교수님
교수? 이 부름을 붙여 부르면 좋아할 줄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여 나 역시 이 부름을 많이 듣는다. 소위 학창시절엔 이 단어를 무척 좋아했다. 멋있는 단어였다. 이 단어가 나의 것이기를 바랐다. 이 소리를 들을 날을 꿈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젠 심심찮게 가는 곳마다 듣는다.
이젠 사람들은 당연히 이 부름을 붙여 불러야 하는 줄, 그게 예의인 줄, 그렇게 불러야 좋아하는 줄 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냥 굳이 아무개거나 아무개 씨라고 부르지 않을 양이면 상관없다. 선생이든 작가든 강사든. 오히려 교수란 부름이 친근하지도 않고 부담스럽다. 차라리 그렇게 불러줄 양이면 선생이 좋다. 그럼에도 나 역시 그게 예의로 사회가 받아들이는 것 같아 현직 교수거나 전직 교수라면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선생보다 교수란 부름이 더 높여, 아니면 귀히 여겨 부르는 부름, 교수라는 부름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들을 일컫는 부름으로 아는 한. 사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나 대학교수나 같은 부름 프로페쉐르로 부른다.
글쓰기, 인문학, 고전읽기나 그리스신화 강의를 하다 보니 내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 중에선 전직 교수나 현직 교수들을 종종 만난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인들과는 달리 질문도 거의 안하고 그냥 듣는다. 설령 훤히 아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혹여 틀릴 수 있더라도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냥 듣는다. 때문에 그 분들이 전직 교수인지 현직 교수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래 강의하다보니 촉이 온다. 일단 진지한 자세며 눈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접근해서 말을 걸면 그제야 신분을 밝힌다.
그럼에도 주눅 들면 강의를 할 수 없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 소위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배짱이 있다면 있고 그걸 즐긴다면 즐기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뻔뻔스럽게 무난히 강의를 한다. 이렇게 만난 교수님들이 꽤 많다.
지난봄에 김제에서 진행한 자서전 쓰기엔 전직 이공계 교수님 한 분이 오셨다. 외국에서 선교서업을 하시면서 잠시 한국에 들어오셨다가 내가 진행하는 강좌를 알고 오셨다. 장장 16강을 다 들으시고 끝난 그 다음날에 건너가셨다. 매주 과제를 한 번도 빠짐없이 하셨다. 빨간 편으로 지적한 것들을 불쾌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고맙게 받아들이셨다. 항상 아니오가 아닌 예로만 받아들이시던 이 분은 네팔에 돌아가시면 그곳에 있는 교민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겠노라 하셨다. 그동안 사용한 간이교재를 활용해도 되겠냐 하시기에 다시 입력해서 사용하려면 번거로우실 것 같아 원고를 아예 드렸다. 평생을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셨으니 늘 교수님 대접을 받으셨을 텐데, 언제나 겸손하셨다.
현대백화점 글쓰기 강의할 때 만난 모대학교 전직 총장님 역시 강의하는 동안 감쪽같이 전직을 숨기셨다. 매주 글을 써서 첨삭을 받으셨다. 하나하나 지적들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셨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속도랄까, 배움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이전의 이공계 스타일을 문학적 스타일로 확 바꾸셨다. 그 점이 놀라웠다. 이제껏 그렇게 빨리 배우는 수강생을 만난 적이 없었다. 꽤 오랜 기간 강의를 하던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을 듣는 시간, 그제야 그분이 명함을 주셨다. 놀랍게도 K대 총장 명함이었다.
이외에도 성동도서관 그리스신화 강의할 때 만난 소수 스카이대학에 속하는 대학의 현직 교수, 서울자유시민대학 강의에서 만난 명문 사립대 교수, 꽤 여럿의 교수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다시 언급하기도 뭐할 만큼 겸손하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교수요, 그걸 배워서 적용하려는 교수이미, 그걸 즐기는 교수들이란 점이다. 뭔가 남다른 교수들, 나는 그분들을 멋쟁이 교수라고 부른다.
앞에서 소개한 전직 물리학교수님도 그렇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교수님 한 분과의 만남은 현재진행형이다. 3년 전 그리스신화 강의에서 만난 이후로 내가 진행하는 강의엔 언제든 오신다.
그동안 고전읽기, 영화읽기, 인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오셨다. 어느 날 촉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 오히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관계를 이었는데, 그분께서 꼭 점심을 한 번 사고 싶다 하셨다. 그때에 처음 그분의 전직을 알았다. 나 역시 불문학을 전공했으니 반가웠지만, 불문학으로 치면 그 분은 나의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었다. 전직 불문학과 교수였다. 심지어 내가 불문학에 관한 강의를 해야 하는 때에도 오신 이 분은 H대학교에서 불문학 교수로 정년퇴직을 하셨다. 성함을 알고 나니 책으로, 또는 명성으로 익히 아는 분이었다. 학창시절에 알았다면 사인이라도 받고 싶을 만큼 학회활동도 만만치 않게 하신 전직이 화려한 분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 분은 내가 양천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면 꼭 오신다. 항상 중간쯤에서 한두 자리 앞에 앉으신다. 아무 질문도 안하신다. 점심 약속이 아니면 눈만 마주치곤 아무 말씀 없이 나가신다. 그렇게 한 번도 빠짐없이 오시면서 조용히 오셨다 조용히 가신다. 들을 게 무엇이 있으랴만 열심히 메모도 하신다. 어쩌다 만나 말씀을 나누면 나를 보면서 지난날들을 반성한다신다.
이분에겐 다른 수식어를 붙이고 싶으나 다른 호칭이 마땅찮아 그냥 멋쟁이 교수님이라 부르련다. 겸손함과 진지함, 사람에 대한 예의에 배려까지 갖춘,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엔 거의 완벽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보여주시는 분, 존함을 꼭 밝히고 싶지만 결례일 것 같아 밝히지 못하지만 이분을 만나면서 나의 멋진 미래를 꿈꾼다. ‘바로 저 모습이야. 저 삶이야. 저 모습을 나의 모습으로, 저 삶을 나의 삶으로 삼아야지. 그러면 내 인생의 가을도 쓸쓸하지만은 많을 것 같아.’
처음엔 이 분의 정체를 알고 나서 부담스러웠지만 매번 강의할 때 만나다 보니 이제는 먼저 그 자리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무척 반갑다. ‘여전히 건강하시구나!’하는 마음이다. 큰형과 같은 연세에도 여전히 꿋꿋하신 모습, 여전히 총기어린 시선, 부럽기도 하다. 이분을 만나면 먼저 마음이 즐겁다. 부답도 없다. 내가 설령 실수하더라도 넉넉히 받아주실 것이기에. 앞으로 올해 세 번 더 수요일에 이 분을 만난다. 가능하면 이번 기회엔 기꺼이 식사 대접 한 번하고 싶다. 그래 다음주 수요일에 시간이 가능할지 여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