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105- 건강한 욕망을 위하여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이다. 때문에 욕망은 행동을 유발하거나 말을 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존재가 살아가는 힘은 바로 이 욕망에서 나온다. 욕망이 없는 인간은 삶의 의욕을 잃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하직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욕망을 갖고 있다. 근원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도 있어야 존재는 살아남는다.
비단 인간뿐 아니라 동물은 물론 식물도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살아간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야 말로 존재의 가장 강한 욕망으로, 이를 능가하는 욕망은 없다. 가장 근본본적인 욕구, 생존욕구 또는 개체보존의 욕구가 그것이다. 모든 생물을 통틀어 말하면 생명력이다. 물 한 방울 없을 듯싶은 벼랑에 매달려 살아내는 소나무를 보라. 얼마나 강한 힘이던가! 그 척박한 삶의 자리에서 나무는 생존을 위해 바위틈으로 뿌리를 밀어 넣어도 보고, 벼랑을 타고 내려가기고 한다. 그렇게 살아남는 힘, 생명력보다 강한 힘은 없다.
그 다음으로 본질적인 힘은 종족보존의 힘으로 짝짓기의 힘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짝짓기를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개체보존을 해야 종족보존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개체보존이 제일욕구일 수밖에 없으나, 그 다음엔 그 강렬한 힘은 종족보존으로 넘어간다. 때문에 존재는 종족보존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수매미는 죽을힘을 다해 노래를 하여 짝짓기에 성공하면 오래지 않아 삶을 마감한다. 수벌 역시 여왕벌과 교미에 성공하면 몸을 던져 생을 끝낸다. 이뿐이랴 인간 역시 상황에 따라 종족보존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욕망은 이것으로 끝난다. 인간은 여기서 한술 더 뜬 욕망을 갖고 있으니, 이것이 사전적 의미의 욕망으로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이다. 이를 성경은 창세기에서 이브와 뱀의 장면으로 설명한다. “이브가 그 과일을 바라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더라.”라고 한다. 먹음직함은 곧 생존욕구요, 보암직함은 종족보존 욕구요, 지혜의 탐은 기본 욕구를 넘어선 인간만의 욕구라 할 수 있다. 학자에 따라 이를 잉여욕구, 문화욕구, 쾌락욕구 또는 제3의 욕구라 한다. 이 세 번째 욕구, 인간만이 가진 이 욕구가 인간을 모든 동물을 능가하는 존재로 나아가게 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생물이 가진 욕망에다 잉여 쾌락을 더한 욕구가 인간만이 가진 욕구인데, 이는 에피쿠로스가 말한 최소한의 욕구로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가장 기본적인 식욕은 살기 위한 것으로, 의복은 몸을 보호하고 추위를 이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집은 비바람을 피하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여기에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안락한 집으로 덧붙이면서 만족은 점차 멀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엔 더 좋은, 더 맛있는, 더 안락한 것을 필요로 하고, 끝내 인간은 만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부터를 우리는 욕망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욕망은 끝내 채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욕망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이 욕망, 그것이 꿈이든 희망이든 그러한 욕망 때문에 존재는 살아갈 힘, 무엇에 도전할 힘, 무엇을 얻을 힘, 무언가를 할 힘을 얻는다. 이처럼 욕망은 존재에겐 반드시 필요한 힘이다. 때문에 도를 넘지 않은 적절한 욕망, 욕망을 가지되,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해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몸에 해를 주지 않는다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이상과 같은 조건에 부합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욕망이요 건강한 정신에 깃든 욕망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정신에 건전한 욕망이 깃든다. 건강한 욕망은 건강한 육체를 낳는다. “건강하게 살려면 건강한 너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욕망, 너에게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욕망, 너에겐 손해지만 그로 인해 상대는 기쁜 욕망이되, 상대의 기쁨으로 네가 더 즐거운 욕망을 가져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