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07- 생각을 먹고 사는 존재

영광도서 0 541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생각을 한다. 살아 온 생각을 하고,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살아가려고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기억, 어떻게 살고 있는지의 현재의 삶, 어떻게 살아갈지의 구상 등, 수 없는 생각을 한다. 잠시도 생각하지 않는 때가 없다. 이는 의도와는 관계없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생각은 끝이 없다. 이렇게 끝없는 생각을 굳이 나눈다면 잡념, 사색, 명상뿐 아니라 상상, 몽상, 구상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분류할 수 있는 생각을 한다. 생산적이든 소모적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늘 생각을 한다. 이처럼 생각한다는 건 살아 있음의 반증이다.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생각한다. 이를테면 잠을 자면서 하는 생각은 꿈이다. 꿈은 꿀 때는 아주 진지하거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같다. 때문에 꿈속에서도 긴장하며 놀라며 안타까워하며 무척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 깨고 나면 말도 안 되는 일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다. 이렇게 잠을 자면서도 꿈으로 생각을 한다. 물론 꿈속의 산만하고 논리적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은 내가 현실에서 이전이든 지금이든 들었거나 읽었거나 상상했거나 겪었던 일들이다. 그 수없이 많은 일들을 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던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뒤섞인 것이 꿈이다. 의식이 활동하는 때에는 생각의 순서를 나름 정리하고, 생각들의 순서를 정해주는 뇌가 일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이 떠오르지만, 잠이 들면 이처럼 순서를 정하고 나름의 논리를 정하는 좌뇌가 활동하기 때문에 나름의 논리적인 생각을 하지만, 잠속에 들면 우뇌만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떠돈다. 때문에 꿈엔 과거의 총체이자 현재의 총체, 미래의 총체가 마구 뒤섞인 생각들이 겹친 상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존재는 늘 생각한다. 자거나 깨어 있거나 길을 걷거나 누워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엇을 구상하거나 생각을 피하려고 멍 때리고 있어도 생각을 한다. 생각한다는 건 살아 있음의 증명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을 질로 따지거나 양으로 따져서, 생산적이거나 쓸데없는 생각으로, 긍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현실적이거나 망상으로, 구분하여 진지한 생각을 사색, 보다 철학적인 생각을 명상,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찰, 미래를 설계하는 구상,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려는 발상, 쓸모없는 망상, 아무 의도 없는 잡념 등으로 얼마든 나눌 수 있다. 이 모두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생각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존재는 살아 있는 순간순간 생각한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는 때문에 기왕이면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게 좋지 않으랴. 의식이 잠든 꿈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그대로 생각을 내버려두면 의식이 활동하는 깨어 있는 순간에도 잡념이나 망상에 자리를 내어줄 테니, 생산적인 생각이 먼저 자리를 잡도록 생각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지 않으랴. 가끔은 세상을 내다보면서 현재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구상을 한다든가, 자신의 삶을 현명하게 살기 위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한다든가, 쓸모없는 생각을 창의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사색을 한다든가, 때로는 보다 행복하기 위한 자신 비우기를 할 수 있는 명상을 함으로써 생각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생각을 충분히 지배할 수 있는 인간은 생각의 질을 얼마든 높일 수 있다. 그 생각의 질 덕분에 누군가는 예술가로, 누군가는 철학가로, 누군가는 정치가로 살아간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인간은 어느 정도 생각을 지배할 수 있으며, 의도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그 환경에 따라 생각 또한 무의식적으로 환경에 지배를 당한다. 때문에 혼자 닫힌 공간에 있으면 주로 몽상이나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 잡념에 빠진다. 반면 열린 공간에선 새로운 것들과 수시로 마주치기 때문에 보다 긴장하여 마주치는 것들과 생각이 결합을 한다. 이런 무의식적으로 마주치는 것들의 간섭으로 생각이 연합하여 사색을 낳는다. 이처럼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질은 달라진다.

 

혼자 생각하는 것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하는 생각이 다르듯이 생각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니 보다 긍정적인, 보다 생산적인 생각을 위해선 스스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언어를 낳고 나의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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