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1- 다행히도와 하필이면

영광도서 0 517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마음, 지금 이곳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마음이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이 공간의 가치가 달라진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지금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이처럼 마음이란 아주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마음은 세상을 해석하고, 국가를 해석하고, 사회를 해석하고, 너를 해석하고, 심지어 나 자신을 해석한다. 이 해석의 언어를 어떻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모두가 달라진다. 내 안에 입력된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한다.

 

이를테면 ‘다행히’와 ‘하필이면’, 이 두 단어는 내 안에 입력된 모습을 가른다. 우선 다행은 ‘듯밖에 일이 잘 되어 운아 좋음’을 의미한다. 이를 부사로 바꾸면 ‘다행히’로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게’의 뜻이다. 뜻밖이다, 이는 우연이란 말에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행히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 뜻밖이니까, 우연과 다행은 교감하는 언어다. 그러니 세상 모두를 다행으로 여긴다면, 다행히로 생각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항상 운이 좋다는 뜻이다. 다행히에다 보조사 도를 붙이면 다행히도요, 그러니 다행히란 부사를 강조한 것이 다행히도이다.

 

반면 ‘하필’의 뜻은 ‘달리하거나 달리 되지 않고 어찌하여 꼭’이란 뜻으로 명사로도 쓰지만 부사로 더 많이 쓴다. ‘하필이면’이라고 써서 ‘되어 가는 일이나 결정된 일이 못마땅하여 돌이켜 묻거나 꼭 그래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캐물을 때 쓰는 말’이다.

 

다행과 하필의 이 말들, 두 단어 모두 지난날을 돌아보고 스스로 평가할 때 쓰는 단어이다. 서로 상반된 시각의 단어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하필이면은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후회의 감정을 내포한 단어라면, 다행히도는 되돌려보아 좋은 마음으로 그 상황을 행운으로 여기는 뜻을 내포한다. 곧 다행히도는 행운을 낳고, 하필이면은 불운을 낳는다. 이를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적용하면 다행히도는 인연이요 운명이라면, 하필이면은 악연이요 불운이다. 출발은 같으나 결과는 다른 뜻을 낳는 게 인간의 만남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때로는 다행히도가 하필이면으로 변할 수 있고, 하필이면이 다행히도로 바뀔 수 있으니, 살아가는 한 다행이기를 바랄 수밖에.

 

사람과 사람은 만난다. 처음에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둘은 관계를 맺는다. 관계는 깊어진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 사랑이 머문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 만남은 인연이라고, 우리 만남은 운명이라고, 참 다행인 것 같다. 내가 너를 만난 건, 신이 내린 만남이요, 필연이다. 정말 필연이고 운명일까? 어느 날 둘은 심하게 다툰다.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난 것 같다. 악연도 이런 악연도 없다. 하필이면 왜 만났나 싶다. 처음 만난 순간과 그 자리가 원망스럽다.

 

“그를 만난 건 참 불행이야. 하필이면 내가 그때 그곳에 가서 그 놈을 만난 건지 이해가 안 돼.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돼.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그 놈을 만날 게 뭐야. 악연 중에 악연이지.”처럼 하필이면과 악연, 불행은 한 가족처럼 동행한다.

 

반면 “널 만난 건 참 다행이야. 그날 그곳에 내가 가지 않았으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어쩌면 내가 그곳에 갔고, 어쩌면 너는 그곳에 있었니? 그러니 너와 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운명이야.”처럼 다행히도는 인연과 운명과 함께 동행한다.

 

내 삶을, 아니 너와 나의 우연한 만남을 인연이나 운명으로 만드는 것은 다행히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음이고, 너와 나의 우연한 만남을 악연이나 불운으로 만드는 것 역시 하필이면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음이다. 우연은 인연과 악연을 부르고, 때로 운명과 불운을 부르기도 한다. 인연이니 악연이니, 그건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해석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 삶에는 다행히, 인연, 운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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