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142- 그릇된 선민사상의 폐해
비가 많이 내리고 난 뒤 산에 오르면 여기저기서 물이 솟는다. 이삼 일 후 산에 오르면 그 중에 샘처럼 솟던 곳들은 많이 줄어들어 어쩌다 솟는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면 거의 샘이 없다. 드물게 어쩌다 볼 수 있다. 이쯤에서 샘을 발견한다. 땅에서 물이 솟는다고 샘이라 부르지 않는다. 모든 겉물들 다 사라지고, 샘인 양 솟던 물들 다 말라붙고 가문다 싶을 때 드물게 솟아나야 드디어 샘이라 부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칭 영웅은 많지만 진정한 영웅은 드물고, 너도나도 선민의식을 가진 자는 많으나 진정한 선민은 드물다. 오만이 선민의식을 갖게 할 뿐이다. 문제는 오만하게 자신을 선민으로 믿으면, 자신도 모르게 선민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오만한 말을 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신은 사회를 변혁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며, 자신이 그 일을 방기한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 믿기에 어느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의식을 갖는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위선이고 그때그때 자기 합리화하는 도덕불감증으로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선민의식은 처음부터 본인 자신이 갖지는 않는다. 주변에서 만들어준다. 물론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달리 허영에 물이 잘 드는 특징이 있는 존재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중 어린왕자가 떠난 여행에서 두 번째 방문한 별의 주인공 허영쟁이는 오직 박수받기를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박수를 칠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박수를 좋아하는 성향, 이런 사람들이 선민의식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때문에 이들 주변에는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박수와 환호 또는 응원에 힘입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선민의식을 갖는다. 그러면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설령 올바르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그를 옹호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선민으로 여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첫마음을 잊지 않는다, 항상 겸손할 것이다, 항상 정의의 편에 설 것이다, 라고 누구나 다짐한다. 그러나 선민의식은 하나둘 응원하는 이들을 얻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처음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잊어간다. 선민의식이 서서히 마음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들다 거의 마음의 색을 바꾸면 다른 색은 마음에서 사라진다. 세뇌 또는 자기세뇌는 그릇된 선민의식을 갖게 만든다. 때문에 편협한 사람들 속에 편협한 선민이 자리한다. 이는 이기적 집단을 만들어 편견에 빠지게 한다.
어떻게 저렇게 무지할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은 그런 예들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 못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이처럼 세뇌는 무섭다. 사이비종교도 그렇기 때문에 흥하고, 어떤 사상이나 폐쇄적인 국가, 폐쇄적 집단도 그런 때문에 생긴다.
우리 모두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보다 상식적으로, 보다 보편적으로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편협하지 않은지, 나는 누군가를 지나치게 믿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를 지나치게 영웅처럼 떠받들고 있지는 않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선민의식을 가진 소영웅은 아니라도, 누군가를 소영웅으로 만들고, 그릇된 선민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한 개인에 속하지만 나의 마음의 자세는 무늬만 영웅이거나 가짜 영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회를 좀먹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나 자신도 일조하지 않도록 나의 현주소를 살펴야 한다. 우리에겐 가짜 슈퍼맨, 무엇이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사기 치는, 무엇이든 자신이 하는 것은 다 옳다고 자기 합리화하는 가짜 영웅, 무늬만 영웅이 아니라 진정한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민중을 섬기는 이들,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 고서에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