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7- 비 오는 밤 산길을 걷기

영광도서 0 499

같은 길을 걷는다고 같은 길을 걷는 건 아니다. 인생이란 것이 탄생하고 살고 죽는 것은 같지만 각자 인생이 각각 다르듯, 길 역시 인생을 닮아 각자 다른 길로 걷는다. 물론 피상적인 면은 같으나 각자의 마음에 길은 달리 나타난다. 길이 그렇듯이 인생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평탄한 길일 수도 있고 캄캄한 밤길일 수도 있고 울퉁불퉁한 고행의 길일 수도 있을 터이다.

 

도관리 우렁골로 이사를 온 후에도 교회는 다니던 광암리 교회에 다녔다. 깊은 산골이었지만 광암리에 교회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특별한 일이 있을 게 없는 마을에서 그래도 특별한 행사를 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회는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다 노트를 나눠주기도 했고, 먹거리도 주곤 했기 때문에 남자 어른들은 많지 않았으나 마을의 가정 대부분은 누구 하나라도 교회에 다녔다. 우리 역시 엄마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아버지를 제외하곤 모두 교회에 다녔다.

 

이사를 하고 교회에 가려면 4킬로미터를 족히 걸어야 했다. 거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교회에서 집에 가려면 아무도 살지 않는 산길로 2킬로미터를 가야 하는 거였다. 광암리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 우리 집에 가려면 인적 없는 길, 길이라고 해봐야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풀이 우거진 숲길이었다. 그 길을 헤치며 한참 걸어야 중간에 한 집이 있고, 그 집을 지나서 다시 으슥한 산길을 좀더 걸어야 우리 집이었다. 낮에는 괜찮지만 밤이면 캄캄한 밤길이 문제였다. 게다가 길도 평탄한 길이 아니라 곳곳에 바위들이, 너덜들이 널린 길인데다가 우리 집에서 광암리로 갈 때는 깔딱 길에 해당했고, 돌아올 때는 내리막길이라 평탄한 곳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마을을 잇는 길이라기보다 산길이라고 보면 좋았다.

 

그럼에도 그 길을 따라 교회에 다녔다. 낮에는 혼자도 다녔지만 밤엔 혼자 다니기엔 어려웠다. 하여 밤에는 작은형과 함께 다녔다. 밤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려면 그래도 달밤이면 꽤 다닐 만 했다. 가끔 바스락거리면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때도 있었고, 나무 그림자를 마치 짐승이 지나가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도 있었지만 가끔 머리가 시원해지는 체험을 하며 다닐 만 했다. 달밤은 아니라도 날이 맑은 날이면 별빛을 길잡이 삼아 다니면 괜찮았다. 워낙 불이 없는 세상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산길이라도 길은 충분히 찾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열일곱 살의 작은형과 열네 살의 나는 교회에서 밤 예배를 마치고 밤길을 걸어야 했다. 광암리 지역을 지날 때는 문제가 없었다. 고개를 넘으면서는 캄캄해서 길을 손으로 더듬으며 걸어야 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지, 캄캄해서 길은 안 보이지, 그래도 발로 밟아 딱딱한 곳은 길인 줄 알기에 그렇게 더듬거리며 산길을 걸어서 조금씩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비 오는 밤이라도 보통 길에선 정신을 집중하면 길을 구분해 낼 수 있지만, 나무 우거진 산길이라 길을 구분할 수 없었다.

 

뱀은 잘 잡지만 겁이 많은 작은형은 뒤에서 나를 따랐고, 아이러니하게도 뱀은 무서워하지만 다른 것들엔 겁이 없는 나는 별 두려움 없이 앞장을 서서 길을 찾으며 걸었다. 작은형은 연신 내가 바로 앞에서 걷는데도 내 이름을 부르면 어디 있느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바로 앞에 있다고 대답하며 산길을 헤쳤다. 그렇게 더듬거리며 나무 우거진 산길을 벗어나 밭 옆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조금은 겁이 달아났다. 길도 얼추 찾기 쉬웠다. 그런데 작은형이 나에게 저 밑을 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도깨비불이 왔다 갔다 한다며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작은형이 지시하는 곳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작은형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겁에 질려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랐다. 그렇게 밭 옆길을 걸어서 우리 집에 가려면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그 집 옆에 이르렀다. 개가 잠시 짖었다, 무척 반가웠다. 잠시일 뿐 우리를 알고 있는 개는 짖기를 멈추고 제 자리를 지켰다.

 

이미 모두 잠든 밤이라 아저씨한테 허락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작은형은 그 집 호밀가리에서 비에 젖지 않은 호밀 한 단을 뽑아내어 호밀단에 성냥불로 불을 붙였다. 사방이 환해졌다. 한꺼번에 타지 않도록 끝부분을 잔뜩 움켜쥔 작은형은 그제야 앞장을 섰다. 그 집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나 도랑을 건너면 다시 소나무 숲길이었다. 숲길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그렇게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던 우리 집에 불빛에 윤곽을 드러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만났고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 때로는 캄캄한 지리산을 혼자 걸었고, 낯선 산길도 용감하게 혼자 걸었다. 그 길들 중 그날 밤에 작은형과의 그 길은 잊지 못할 순간들로 남았다. 두렵지는 않았다. 겁에 질려 있었지만 작은형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겁난다거나 그런 감정은 없었다. 오로지 길을 찾는 데만 집중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겁이 난다 두렵다 그런 건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어두운 산길이라도 혼자 걸을 만큼 대담한 마음의 나에게 남은 기억 중 그 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작은형에겐 보이는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밤길, 같은 길을 걸어도 보이는 것이 다르고 그 길을 받아들이는 게 달랐던 그 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 내가 전혀 두렵지 않았던 건 도깨비의 존재나 귀신을 믿지 않는 믿음과 함께 겁은 많은 형이지만 그래도 뒤에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 둘이란 생각 덕분이었을 둣싶다. 지금도 귀에 들릴 듯한 작은형의 겁먹은 목소리. “복현아, 어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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