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4- 고향을 떠나는 친구들
시간은 그냥 흐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끌고 다니며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변한다. 머물러 있어도 변하고, 떠나도 변한다. 그냥 머물러 변하는 건 변하는 걸로 인식하지 않을 뿐, 그래도 사람은 변한다. 더구나 환경에 변하면 눈에 보이게 변한다. 그런 변화 속에 각자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한두 해 지나면서 농촌도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마을 분위기는 많이 변했다. 가연과 집, 토지는 변화가 없었으나 사람들의 변화는 컸다. 우리 동네에 여러 집은 농촌을 떠나 공장이 있는 도회지로 이사를 갔다. 그렇다고 빈집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른 동네에서 이사를 온 집이 그 집을 대신 메웠으니까.
이렇게 가족 단위로 이사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집은 그대로 있지만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서울로 식모로 간 처녀, 버스안내양으로 갔다는 처녀, 공장으로 갔다는 처녀들이 있는가 하면 차 조수로 취직했다는 친구며, 덕소나 구로공단에 취직했다는 친구들과 선배들, 이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마을엔 젊은이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들이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도시 생활은 도대체 어떤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설이나 추석에 돌아올 때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우리는 여전히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거나 일할 때 고무장화를 신는 게 다였는데, 이들은 소위 삐까번쩍한 구두를 신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또한 옷차림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이 있었으며,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우리 얼굴은 햇빛에 그슬려 검었으나 검은 줄도 몰랐는데, 이들 얼굴운 희고 곱다는 게 달라도 아주 달랐다. 도시가 농촌보다 좋긴 좋은 것 같았다. 물리 달라도 아주 달라서 도시 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하얗게 되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들처럼 도시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자신도 없었다. 도시에 갔다가 온 그들은 다시 돌아갈 때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으나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냥 머물러 있는 것, 낯익은 곳에 사는 것이 좋았다. 낯선 삶은 싫었다.
그럼에도 도시로 갔다가 추석이나 설날 그들이 돌아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밤이 가는 줄 몰랐다. 마을에 활기가 넘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도시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몰랐지만 동네 사람들이 볼 때 마치 뭔가 성공하거나 출세한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은 우리 뒷집에 사는 선배가 동네에 남아 있던 선배에게 얻어터진 일이 있었다. 우리 마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밤이면 캄캄하긴 했다. 그럼에도 익숙한 우리는 좁은 오솔길도 아무런 불도 없이 잘 걸어다녔다. 더구나 신작로는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조금 익숙하면 허옇게 길이 보여 다니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뒷집에 선배 형, 덕소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다니러 온 선배가 동네 선배들하고 신작로로 모처럼 놀러가느라 밤길을 걷다가 도저히 캄캄해서 길이 잘 안 보인다고 한 말이 발단이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동네에 남아 있던선배가 도시에 나갔다 오더니, 멀쩡히 잘 보이는데 안 보인다고 건방을 떤다며 몇 대 쥐어박았다.
그때는 뒷집 선배가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요즘 전기불이 안 켜진 시골길을 가려면 그때 뒷집 선배의 말이 이해가 간다. 환경에 따라 사람도 적응하게 마련이다. 그때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아스라한 등잔불 하나로도 그 아래서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불빛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자 한 자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명절 때면 도회지로 나갔다 돌아와 한바탕 동네를 헤집고 다니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 친구들과 선배들, 그들이 떠나고 난 다음 날부터는 괜히 싱숭생숭했던 날들이, 더구나 얼굴이 희어진데다 옷도 맵시 있게 차려 입고 돌아와 더 곱게 보이는 또래 여자애들이 왔다가 간 후면 가끔 마음이 흔들려 한번 공장에 취직하러 친구를 따라갈 것을 그랬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던 날들이 바로 어제였던 것처럼 머리를 맴돈다. 애잔한 한 폭의 풍경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