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39-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영광도서 0 892

안전지대 없는 삶, 편안한 날들 속에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치는 삶, 나이가 어렸을 땐 그런 일쯤은 별로 걱정 없이 산다. 나이가 들면 알겠다. 하루하루 편안한 닐들, 별일 없이 지내는 날들이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고마운지 그걸 알겠다. 정신적인 일들도 일들이지만 신체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는 알겠다. 어렸거나 젊었을 땐 어쩌다 병들어도 금방 낫겠지 하는 생각에 별 두려움이 없었는데, 나이 들면 그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깜짝 서울을 다녀오고 그 다음해에 몸에 이상증세가 왔다. 한창 바쁜 봄을 보내고 좀 쉴 여유가 생겼을 때였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았다. 오른쪽 옆구리가 아팠다. 기침을 하거나 숨만 쉬어도, 하품만 해도 옆구리가 당겼다. 그러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중세를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엄마의 처방은 간단했다. 지난해에 우리 교회에 와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간 주택영목사님께 가서 안수기도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목사님보다는 사모님이 치유의 은사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사모님의 기도를 받고 병을 고친 사례가 많았다. 그분께 안수기도를 받고 오라는 것이었다.

 

목사님 교회는 동면에 있었는데, 주소만 알고 있었다. 일단 그 주소로 목사님 교회에 가기로 했다. 7월 마지막 날이었다. 집에서 8킬로미터 면소재지까지 걸어야 했다.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 채 못 미쳐 동묜 삼거리에서 내렸다. 길 한가운데엔 풀이 난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무척 날씨가 무더웠다. 그 길을 혼자 걷노라니 괜히 서글펐다. 2-3킬로미터쯤 걸어야 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 갑자기 입가에 떠오르는 노래는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였다. 그 노래를 읊조리며 걸었다.

 

“갈 곳도 없이 떠나야 하는가. 반겨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리.” 대략 그런 가사였는데 내 신세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노래를 부르면 햇살 따가운 여름 길을 가려니 서글퍼 눈물이 흘렀다. 지나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신작로를 혼자 쓸쓸히 걸었다. 마치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그 느낌으로.

 

목사님 교회에 도착했다. 일면식이 있는 터라 목사님 내외께서 반겨 맞으셨다. 사정을 들으시고는 기꺼이 인수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교회 안에서 마음을 정제하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신문을 보려고 했더니 그것을 만류하시고 준비 기도를 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잠시 후 예배당 중간쯤에 긴 의자에 누우라고 하셨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목사님은 내 머리맡에 앉으셔서 머리에 손은 얹으셨고, 사모님은 내 다리 쪽에 앉으셨다. 사모님의 가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사모님은 기도를 하시면서 내 오른쪽 옆구리에서 가슴 쪽을 쓰다듬으시면서 간절한 기도를 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이 나를 울렸다. 그런데 연신 가슴을 쓰다듬으며 기도하시는 사모님의 손길이 나를 너무 간지럽게 했다. 간지럼이 시작되면서 울음은커녕 웃음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기도하시는 사모님 앞에서 웃을 수는 없었다. 그 웃음을 참으려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너무 참다보니 웃음은 사라지고 울음이 대신 터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울음이 터졌다. 목사님은 아마도 은혜를 받아 흐느껴 운다고 생각하셨던지 “젊은이 용기를 가지세요.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위로하셨다. 기도가 끝나고도 한참을 흐느꼈다. 너무 많이 운 탓인지 가슴이 후련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정성스럽게 온 힘을 다해 기도해주신 목사님과 헤어져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목사님 내외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들으면서 목사님 교회를 나섰다. 마치 아들을 떠나보내는 듯하게 내 뒷모습을 지켜보시던 목사님 내외분, 돌아선 내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목사님, 진정한 주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목사님도 없을 듯하다. 그래도 그때는 진정한 주님의 종으로서 봉사하는 목사님들이 많았던 듯싶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기 그지없는 목사님 내외분,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두 분,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시던 두 분의 인자한 모습이 눈에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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