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51- 글쓰기로 맺은 고마운 인연

영광도서 0 791

글을 쓴다는 건 여러 가지로 좋은 것 같다. 글을 쓰노라면 손가락을 움직이니 이것도 운동이요, 손가락을 따라 생각이 움직이니 정신운동도 되니 참 좋다. 글이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면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고 미래를 가끔 상상하기도 하니, 여러 가지로 좋다. 그러다 어찌 알랴, 글이 밥 먹여줄 수도 있으니.

 

나는 많은 글쓰기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글쓰기를 좋아한 덕분에 내 길이 열렸다. 시골에선 중학교를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하고 몇 년 지나면 주일학교 교사를 거의 의무적으로 맡았다. 더구나 주일학교 다닐 때 요절을 제일 잘 외웠고, 연극할 때 대사가 긴 주인공역을 맡았던 나였기에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아이들에게 설교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렇게 교사활동을 하면서 글쓰기를 좋아한 나는 홍천군내 교사연합회에서 발행하는 교사연합회보에 원고를 보내곤 했다. 그렇게 보내면 하나도 예외 없이 글이 실렸다. 어느 해에 교사강습회가 있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나를 보냈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는데 임선생이 알아보았다. 회보를 맡아서 편집하는 선생님이었으니 내 글을 읽고 실어주었던 터라 내 이름을 보자 말을 걸었다. 그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내 사정을 알고는 검정고시를 제안했으니, 내 공부의 공식적인 출발점이었다.

 

그분은 화랑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화랑중학교는 군인들이 처음에 교사로 활동하다 민간 청연들이 봉사로 가르치는 곳이었다. 검정고시 9과목 중 이 학교를 졸업하면 4과목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멀기 때문에 다닐 수는 없었다. 임선생은 검정고시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검정고시를 보기까지의 과정도 자세히 안내해주면서 검정고시를 볼 것을 권했다. 내가 원했던 것이 공부인지라 고맙다며 인사를 했고, 강습회가 끝난 날, 나를 학교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중학교 참고서를 과목별로 챙겨주었다. 동아 완전정복 참고서들, 그리고 교학사 필승 참고서를 무료로 챙겨주었다. 그걸로 공부하면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중학교 교과서는 접한 적은 없고 참고서를 받으니 뿌듯하고 그걸로 공부할 생각을 하니 설렜다.

 

고마운 임선생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뜻밖의 선물을 받아 돌아오려니 집에 가서 책을 펼칠 생각을 하면서 설렘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책을 펼쳐보면서 무척 설렘이 있었으나 실제로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일터로 나가야 했고, 밤이 되어야 일터에서 돌아와야 했으니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밤 열시는 되어야 했다. 그때쯤이면 피곤해서 공부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깜빡이는 등잔물 아래서 책을 펼쳐서 조금씩 공부를 하기는 했다.

 

그런 사정을 알았는지, 혹시나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염려한 임선생은 자신의 학생을 일부러 우리 집까지 보내서 검정고시 안내서와 응시원서를 보내왔다. 같은 면내에 사는 여학생이지만 답풍리에 사는 학생이라고 우리 집까지 보냈으니 그 학생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오려면 10킬로미터 거리였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 참 착한 학생이었다. 학생도 학생이지만 임선생의 배려, 그런 고마운 분이 어디 있으랴.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다만 글 원고를 받고 실어주는 인연뿐인데, 내게 베풀어준 그 일들, 그분이 내 인생의 참스승이었다. 물론 글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열어준 선생 그 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일단 춘천에까지 가서 응시원서를 냈다. 그것이 검정고시의 도전의 시작이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일단 시작이 반은 넘은 거니까. 공부와의 인연, 글쓰기 덕분이었다. 내겐 글쓰기는 많은 혜택을 주었고 혜택을 여전히 주고 있다. 그냥 좋아서 쓸 뿐인데, 내게 많은 경제적 축복을 준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이면 이런 저런 신경 안 쓰고 즐기다 보면 나머지는 보너스로 찾아온다. 내가 글을 여전히 쓰는 이유다. 무엇이든 꾸준히 즐기기, 그게 나에겐 삶의 보너스로 찾아온다. 고로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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