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52- 넘어지면 다시 일어섬 돠지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이 때로는 전부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시작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의가 없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뭔가 시작하는 사람은 작은 일 하나쯤은 이룰 수 있지만, 대단한 계획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기왕 시작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봐야 한다.
나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검정고시 원서를 냈으니 평소에 공부를 하지 못했어도 시험은 봐야 했다. 원서 내느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며 경비를 생각해서라도 시험을 보지 않으면 손해였으니까. 그럼에도 일하느라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시험 3일 남겨 놓고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와 수학은 일단 뒤로 제쳐 놓고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다. 주로 암기로 할 수 있는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암기 과목은 얼추 훑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잠을 거의 자지 않았는데도 정신은 또렷했다.
시험은 춘천에서 봐야 했기 때문에 마침 고모사촌 누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전날 춘천에서 자고 마침 누나 집에서 가까운 학교라서 펀하게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영어와 수학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거의 찍다시피했다.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꼬박 스무 시간은 잔듯했다. 그렇게 벼락치기 공부, 잠을 자고 일어나고 나니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그렇게 훤하게 암기했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을 필요로 하는 내용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합격자 발표 결과 당연히 전과목 합격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무적이었던 것은 벼락치기 공부로 아홉 과목 중 영어와 수학만 떨어지고 나머지 과목은 합격한 것이었다.
자심감이 생겼다. 벼락치기로 하더라도 틈틈이 공부를 해두고 막판에 벼락치기를 하면 두 과목 정도는 쉽게 합격할 수 있을 듯싶었다. 4월에 있는 검정고시는 보다 조건이 좋았다. 눈이 많이 오면 일을 못하니까 그때를 이용할 수 있었다.
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엄마가 내 방에 부엌에서 엿을 고았다. 엿을 고려면 거의 하루 종일 장작불을 때야 했다. 아침부터 땐 불로 방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불을 덮고 엎드려 공부를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을 깔고 위에 앉아 공부를 했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다. 땀이 솟을수록 왠지 공부가 더 잘 되었다. 쏙쏙 마리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랬는데 엄마가 갑자기 문을 여셨다. 그리고는 내가 둘둘 두껍게 모아서 깔고 앉았던 이불을 확 잡아 당기셨다. 불시의 일이라 나는 옆으로 쓰러졌고 엄마의 손에 의해 이불이 방겨졌다. 연기가 솟았다. 내가 깔고 있던 이불 밑에서 불이 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께서 내 이마에 꿀밤을 먹이시면서 “이런 미련 곰탱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나절을 불을 땠으니 방에서 견딜 수 없을 텐데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방문을 열어보셨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내 별명은 ‘미련 곰탱이’였다. 덕분에 그 다음 시험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증을 받아오는 것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셈이었으나 내겐 졸업식은 따로 없었다. 특별히 축하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 제도를 몰랐으므로. 다만 고모사촌 누나가 자랑스럽다면서 배웅해 주었다.
시작은 그랬다. 우연한 만남들, 그리고 공부의 시작, 중학교 교과서는 구경도 못하고 참고서로만 공부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중학교 졸업생이 되었으니 뿌듯했다. 그리곤 춘천에 나간 김에 중고서점 경춘서점에서 고등학교 참고서를 일괄 구입했다. 그곳이 아니면 책을 구입할 수 없었으니까.
임선생이 열어준 시작, 그 시작이 나를 일 년 만에 중학교 졸업생으로 바꿔주었다. 다음엔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기필코 합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 가지 뜻을 가지고 그 길을 가라. 실패도 있으리라. 좌절도 있으리라. 그러나 디시 일어나 그 길을 가라.”라는 어느 현자의 말처럼, 한 번도 시도하지 않고 생각만 하다 마는 것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현명한 삶이란 생각으로 다음으로 나가련다는 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