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3- 새의 거룩한 장례식

영광도서 0 556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속에서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이 동요를 떠올릴 때면 한때는 나도 이렇게 고운 마음, 맑은 마음이 있었다는 생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아! 옛날이여! 나도 한 때는 참 순수했었다. 아니 순진했었다. 새들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고, 사람처럼 깊은 생각을 하는 존재로 믿었다.

 

느릅째기라고 부르는 새, 어쩌다 이 새집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았다. 이 새는 새집을 높은 곳에 짓지 않고 풀섶에 은밀하게 짓는다. 처음엔 파롬한 알 대여섯 알을 보기 좋게 새집에 낳아놓는다. 얼마 지나면 알에서 새끼들이 나온다. 그때부터 어미는 새끼들을 위해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른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새끼들은 뾰족하면서 발그레한 입속을 드러내며 서로 짹째글 거린다. 어미는 그 중에 한 입에 먹이를 넣어주고는 다시 어디론가 벌레를 물러 떠난다. 새집을 발견해 놓고 이런 모습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새집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 귀엽게 짹짹 거리던 새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마리만 남는다. 이상스럽게도 이 한 마리는 나중에 어미보다 더 큰 모양으로 자란다. 정확하게 이 새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 어미가 낳은 새끼가 아님은 분명하다.

 

어쩌다 이런 새집을 발견하면 아무도 몰래 지켜본다. 그러다 새끼 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집으로 데려온다. 이 새를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다.

 

나는 두어 번 이 새를 붙잡아다 집에서 길렀다. 콩을 불려서 조금씩 먹이기도 하면서 키우면 얼마간 키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라서 날아가려고 발버둥 칠 때면 다리에 실을 매어 두었다. 하지만 새는 어느 정도 제법 자라서 작은 비둘기만큼 키울 수 있었지만 끝내는 죽고 말았다. 나름 새매라 생각하고 이 새를 잘 훈련시켜서 새 사냥을 할 생각이었는데, 죽고 말았다.

 

많이 슬펐다. 친구들한테 더 는 자랑도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 슬픈 건 새의 불쌍한 영혼 때문이었다. 집 뒤에 풀밭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로 했다. 황토가 나오는 풀밭이었다. 30센치미터쯤이나 될까 싶었다. 그 깊이로 파고 바닥에 풀을 뜯어다 푹신하게 깔았다. 그 위에 정성스럽게 새를 편안하게 눕혀 주었다. 그 위에 흙을 덮기 전에 새의 몸에 흙이 묻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꺾어서 정성스럽게 집을 지을 때 서까래를 올리듯 무덤 중간에 얽어놓았다. 그 위에 다시 부드러운 풀을 덮었다. 이렇게 새를 완전히 흙이 묻지 않도록 보호한 다음, 그제야 흙을 덮었다. 그렇게 평평하게 만든 무덤에 작지만 실제 사람들 무덤처럼 봉긋한 봉분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완성한 다음 어른들이 그러하듯 새의 명복을 빌어주는 의식을 혼자 진행했다. 나야 어른들처럼 곡을 하는 건 아니고 두 손을 모아 새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울러 제대로 길러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슬픈 찬송가도 골라서 불러주면서. 그리고 얼마간은 가끔 새의 무덤에 들려보곤 했다.

 

그때 그 시절, 나는 그 시절을 부지하다기보다 순진한 아니 순수한 시절로 기억한다. 무지로 본다면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나의 자랑을 위해 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괴롭혔음을 인정하지만, 나름 새를 사랑한다 생각하고 죽은 후에는 진정으로 새가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정성스럽게, 아주 진지하게 새의 장례 예식을 치러줄 만큼 거짓 없는 마음, 순수한 마음, 그 마음이 그립다. 그때의 내 마음은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내 마음은 너무 징그러워서 도저히 어떠한 그림도 그릴 수 없는 오염된 종이라고나 할까 하여 심히 부끄럽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속에서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아 순수했던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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