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96- 감자를 많이 심은 이유

영광도서 0 535

꿈에 돼지를 보면 복권을 산다고 할 만큼 돼지는 복의 상징이다. 돼지는 무엇이나 잘 먹는다. 지저분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빨리 자란다. 살도 많이 찐다. 때문에 죽어서도 인간에게 고기로 한 몫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 비해 고기도 버릴 것이 없다. 심지어 죽은 돼지 머리는 복의 상징으로 제상 한가운데 윗자리를 차지하고 입으로 돈을 받기도 한다. 살아서도 별 까다롭지 않게 잘 자라주고 빨리 자라주고 죽어서는 고기를 많이 제공해주고 머리로 돈까지 벌어주니, 돼지 자체로는 깔끔한 희생이라면, 인간의 편에선 복덩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 인간의 편에서 그렇다. 동물 중에 돼지가 그런 면에서 으뜸이라면 곡물 중에선 돼지에 버금갈 만큼 알뜰살뜰하게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식물은 감자이다.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사람들에게 별 수고를 끼치지 않는다. 심은 지 가장 빠르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수고에 비해 많은 결실을 주고, 돼지가 머리까지 유용하게 인간에게 제공하듯 감자 역시 썩어서까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동물 중에 돼지가 인간에게 알뜰살뜰하게 도움을 주듯 식물 중엔 단연 감자가 그렇다.

 

감자는 하나에 눈이 여럿 있다. 눈 하나하나 마다 싹을 낼 수 있다. 그래서 감자를 심을 때엔 눈 별로 잘게 쪼개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여러 쪽으로 쪼갠다. 이것을 2-3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는다. 아주 겉마른 땅만 아니라면 감자는 잘 자라는 특성이 있는데다 많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고, 비료를 많이 치지 않아도 되어 경제성이 좋다. 게다가 병충해 염려도 없어서 관리하기도 쉽다. 빨리 자라기 때문에 주변에 풀도 잘 자라지 못해서 수고를 덜해도 된다. 다만 감자알이 밖으로 드러나 해를 보면 푸르스름하게 변하면 먹을 때 아려서 먹기 어려우므로 서너 차례 북만 돋우어 주어 흙속에서 자라도록 관리만 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다가 심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열매를 맺기 시작하므로 하지 무렵이면 살살 감자 주변 땅을 파내서 그 중에 제법 굵은 알을 골라 따서 먹을 수도 있다. 일명 하지감자로 보릿고개라 할 춘궁기를 넘기는 데 도움을 준다. 그때부터 여러 먹거리로 제공을 하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다른 곡식보다 먼저 수확을 할 수 있게 한다. 상품은 팔려나가고 중품은 먹거리로 남고, 아주 작은 알들은 조림용으로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어쩌다 캐는 과정에 상하거나 땅이 질은 때문에 썩은 감자도 하나 버릴 것 없이 거두어져 감자떡용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이렇게 저렇게 다루기 어려운 감자들, 썩거나 상처 난 감자들, 해를 봐서 아린 감자들은 대략 씻어 독에 담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하나둘 모두 썩는다. 모두 썩으면 독한 냄새를 풍긴다. 그때부터 가끔 물을 갈아준다. 그렇게 한동안 물 갈아주기를 거듭한 후 완전히 썩어 가루로 변한다. 그러면 덜 썩은 껍질만 걷어 낸다. 그 아래엔 가루만 남는다. 위로 올라온 가루만 골라내면 쌀가루처럼 흰 녹말가루로 남고, 밑에는 검은 가루만 남는다. 이 가루가 감자떡용이다.

 

나 살 던 곳에선 감자를 많이 심었다. 가장 저비용으로 기를 수 있었다. 가장 수고를 덜해도 되었다. 보리가 자라지 않는 곳이라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을 때 가장 이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씨를 뿌리는 계절이 지나고 여름이 올 즈음이면 식량이 동나서 먹을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감자 밭에서 감자를 한 알 두 알 따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그냥 쪄서 먹었다.

 

그때쯤엔 어른들은 하루 종일 밭이나 논에서 일하느라 바빴다. 때문에 남자 아이건 여자 아이건 상관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아이들이 준비해야 했다. 초등학생들이라 어리긴 했어도 제법 철이 들었다. 양재기를 가지고 감자밭에 가서 줄기를 잘 살려 놓은 채 줄기 주변을 살살 파서 제법 굵은 알들을 하나 둘 따서 모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감자알이라 양동이에 담고 물을 부은 다음 반들반들한 돌멩이로 살살 굴리면 감자는 껍질들이 저절로 까져 나왔다. 그걸 그냥 삶아서 먹을 수도 있었다. 매일 그렇게 먹기 지겨우면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찐 감자를 그릇에 담고 계속 찧으면 찐득찐득한 고물처럼 변해서 맛이 있었다. 이런 음식 중 감자전만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었다. 감자전을 한다면 강판에 갈아두는 것까지가 아이들 몫이었다.

 

특히 우리처럼 가난한 집들엔 감자는 춘궁기를 버틸 수 있는 고마운 곡물이었다. 수확을 한 후에 엄마가 정성스럽게 물을 바꾸고 거르기를 거듭한 결과의 감자떡은 물론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감자장아찌는 맛이 일품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엄마는 감자로 못하는 음식이 없으셨다. 아주 자잘한 감자알부터 썩은 감자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감자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양식 역할을 했다. 다른 곡식은 없을지라도 가을이면 감자구덩이에 묻어 놓고 가끔 입구를 열어 감자를 꺼내다 먹거리로 이용했으니, 감자는 우리에겐 너무나 고마운 곡물이었다.

 

거의 주식이다시피 했던 감자, 그래서 먹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바꾸면서 먹을 수 있었던 감자, 그럼에도 특별식이라 생각한 적이 없는 감자이지만, 지금은 감자는 별식이다. 비 오는 날이면 감자전이 생각나고, 가끔은 엄마표 진한 감자떡이 목고 싶고, 무장아치와는 맛이 아주 다른 쫀득하면서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엄마표 감자장아치가 먹고 싶다.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무엇을 떠올리든 제일 먼저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다음으로 아버지가 떠올라 울컥거린다. 이어서 올망졸망한 형제들의 땟국물이 흐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단 한번이라도 그때 그 집, 그 상황으로 동아가고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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