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4- 옥수수를 따던 겨울밤의 아버지의 이야기

영광도서 0 530

6.25전쟁 때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말했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 코로나19가 몰아치면서 그때와는 정반대로 자칫 모이면 코로나에 걸리니 차라리 흩어져야 안전하다. 사람은 모이면 이야기를 낳고 사연을 낳는데,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니 생각만 많아진다. 모이면 생기는 숱한 이야기들, 그래서 이야기를 낳던 날들이 다시 그립다. 60년대 농촌에선, 아니 나 살던 곳에선 옥수수농사를 무척 많이 졌다. 옥수수가 주식이기도 했지만 옥수수를 정부에서 구매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누에고치를 구입하듯 심사관이 등수를 먹이고 가격을 정하듯, 옥수수 역시 등수를 먹여 구매해주었다. 하여 워낙 옥수수농사는 어느 밭이든 잘 되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옥수수를 무척 많이 심었다.

 

동네 어느 밭이든 옥수수가 자라서 볼만했다. 여름이 깊으면 잘 자란 옥수수들이 늘어선 밭을 보면 마치 군인들이 줄을 지어서 열병하는 모습 같았다. 아니면 발간 수염을 단 옥수수이삭들은 엄마한테 업힌 아기들 같아 귀여웠다. 게다가 높이 자란 옥수수 끝에 핀 옥수수꽃들에서 나리는 꽃가루들이 흩어질 때면 그것도 볼만했다. 옥수수가 완전히 여물기 전에 풋옥수수로 돌라 따서 별식으로 먹거나 땟거리로 삼기도 했다.

 

잘 자라고 잘 여물어 가는 옥수수 밭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 온통 녹색이던 옥수수 밭은 누런빛을 띄고 메말라간다. 바람이 불면 여름과 달리 사그락거리는 소리들이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풋옥수수의 시절을 지나 그때엔 그냥 삶아먹기 어려운 만큼 굳는다. 아니 잘 익는다. 추수의 계절이다. 농부의 손에 들려진 무쇠 낫에 의해 옥수수들이 사정없이, 조자룡의 헌 칼에 적군이 쓰러지듯 바닥에 쓰러진다. 옥수수 밭엔 일정한 간격으로 옥수수 섶 무더기가 생긴다.

 

눕힌 옥수수 섶들에서 옥수수이삭들만 골라서 깐다. 한 무더기에서 옥수수 이삭들을 채취하면 옥수수 섶은 단으로 묶어 인디언 집 짓듯이 모아 세운다. 낫으로 베었을 땐 여러 무더기였으나 단으로 묶인 옥수수 빈 섶들은 여러 단을 한 곳에 모아 세운다. 그렇게 모아 세운 옥수수 섶들은 겨울에 소먹이로 쓴다. 작두로 잘게 썰어서 여물로 끓여서 소에게 먹이는 용이다. 채취한 옥수수들은 지게에 단 소쿠리에 담겨 집으로 옮겨진다.

 

가을이면 집집마다 옥수수 우리들이 생긴다. 밑에 나무토막을 깔아 토대를 만든 다음, 수숫대로 엮은 우리를 세운다. 그 우리 안에 옥수수 이삭들을 담는다. 처음엔 잘 서지 못하다 옥수수이삭들이 얼마쯤 차면 수숫대로 만든 우리는 둥그런 원 모양의 집처럼 옥수수이삭들을 담은 우리로 우뚝 선다. 넓이는 얼마든 조정이 가능하고 앞부분에만 옥수수를 넣을 수 있을 만큼 간격을 두어 문을 만든다. 보통 2미터 높이의 옥수수우리가 마당가에 선다. 그렇게 옥수수를 가득 채우면 위에는 이영을 엮어 지붕을 씌운다. 수숫대로 엮은 우리라서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우리 속에 옥수수들은 아주 잘 마른다.

 

겨울이면 옥수수우리에서 옥수수룰 꺼내다 알로 따야 했다. 낮에는 땔감을 마련해야 하는 겨울, 그렇기에 주로 밤이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 옥수수를 알로 따야 했다. 때로는 마을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옥수수룰 땄다. 널찍한 사랑방에 모여 앉은 사람들, 옥수수를 따 주러 오는 사람들 중엔 자신의 집에서 송곳을 가져오기도 했다. 남자들 중에서 두어 사람이 송곳으로 옥수수이삭의 중간 중간을 밀면 옥수수 알들은 마치 길을 내듯 떨어졌다. 그렇게 중간 중간 길을 내듯 옥수수 알을 따내면 아주머니들이 나머지 알들을 쉽게 따낼 수 있었다. 방안엔 그렇게 밤이 깊어가는 만큼 옥수수알들이 수북하게 쌓였고, 속대들은 밖으로 던져졌다 나중에 불쏘시게 로 쓰였다. 밤이 깊도록 모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럿이 모여 옥수수 알을 따는 날이 아니어도 겨울이면 매일 밤 옥수수 알을 따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께서 송곳을 잡으셨다. 한쪽에서 등잔불이 어둠을 밝혔다. 등을 사용하면 밝긴 한데 기름이 많이 들어서 등잔불을 사용했다. 갑자기 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와 불이 까질 수 있기 때문에 문을 열 때면 등잔 옆에 있는 누군가는 손으로 바람을 막고 있어야 했다. 가족만이 모인 옥수수 알 따기, 그때엔 평소엔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며 우스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수줍음을 많이 타셨던 아버지께서 겨울밤이면 어디에 그런 이야기들을 감추어 두셨던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셨다. 그렇게 겨울밤은 이야기와 함께 깊어갔다. 방안엔 수북하니 옥수수알들이 산처럼 쌓였다.

 

자식들 앞에서도 부끄러워서 한 번도 옷을 벗은 적이 없으실 만큼, 좀체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도 못하셨던 아버지, 그럼에도 옥수수 알을 따는 겨울밤이면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신 것은 옥수수 알 따는 일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으라고 나름 최대한의 용기를 내셨던 거라고 이제야 짐작한다. 모이면 코로나 걸리고 흩어져야 안전한 요즘, 아스라이 밤을 밝히던 등잔불, 하얀 바탕에 ‘불조심’이란 글자가 새겨진 등잔에 켜진 노란 등잔불의 깜박거림, 희미한 불빛 아래라 용기를 내신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 밤도 깊어가고 이야기도 익어가는 속에서 화기애애한 우리 식구들의 겨울밤의 풍경이 잔잔하게 살아온다. 수줍은 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귓가를 간지를 듯한데, 아버지는 벌써 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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