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5- 천막극장, 잃어버린 순수한 고향

영광도서 0 754

텔레비전도 없는 마을, 전화도 없는 마을, 당연히 극장도 없는 마을, 그래선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천막 극장이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선 제법 떨어진 넓은바위 마을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저녁이면 영화상영을 했다. 하룻밤에 두 편 정도를 상영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상영을 하고 떠나곤 했다. 마을에선 그야말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화면이란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실감나고 신기했겠는가. 물론 유료였다.

 

그렇게 싸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우리 마을 반장 백으로 공짜로 영화구경을 했다. 반장은 마을 유지라고 업체 측에서 무료로 보게 했는데, 반장 아저씨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갔더니 자신의 아들이라면서 나를 소개해서 반장 아저씨를 따라 무료로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부분 슬픈 영화거나 무서운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상영과정은 순조롭지는 않았다. 한창 잘 돌아가다가 갑자기 찌지직 소리를 내면서 암흑으로 바뀔 때도 있었다. 그러면 끊어진 필름을 잇느라 기다려야 했으나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매일 밤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영을 마쳤으나 마을 사람들에겐 너무 멋진 경험이었다.

 

일주일이면 꽤 여러 편이었을 텐데 지금도 기억나는 영화는 많지 않다. <갑돌이와 갑순이>라든가 <두견새 우는 사연> 정도였다. 이런 영화를 보고 다음날 일하려면, 혼자서 나무를 한다거나 할 때면 괜히 무서운 생각이 불쑥 솟기도 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은 착각에 무서움이 화르륵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밤이면 귀신이라도 갑자기 나타날 것 같기도 했다. 볼 때는 마치 현실을 대하는 것 같은 실감, 나중에 혼자 걷거나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 실제로 펼쳐지는 듯 실감나는 영화의 장면들, 볼 때는 좋았으나 나중에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럼에도 그 재미가 마음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신문에서 무료영화 상영이란 광고를 보았다. 담임목사가 없는 벽지교회를 방문하여 무료로 복음영화를 상영해준다는 광고였다. 달리 다른 통신 수단이 없던 때라 엽서로 신청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때 교회에서 모든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권사님께는 말을 안 하고 일단 신청했다. 그다지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빨리 연락이 왔다. 그제야 권사님께 일정을 말씀드렸다.

 

약속한 날, 트럭에 두 분이 장비를 싣고 벽지인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 권사님께 인사를 시켜드리고 나는 인계를 했다. 그런데 저녁에 영화를 상영할 것인데 홍보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오신 분들이 일을 키웠다. 나는 우리 교인들만 영화를 보게 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마을 전체에 알려서 최대한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 제안을 했다. 차로 이동하면서 넓디넓은 동네를 돌며 선전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이크를 내가 잡으라는 것이었다. 선교하는 집사님은 운전을 하고 내는 조수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정보를 알리라는 거였다. 하여 그날 생전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홍보방송에 나섰다.

 

그날 저녁 바쁜 철이었지만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 모였다. 볼거리가 없던 때라 비록 복음영화, 예수님에 관한 영화나 회심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영화였지만 모든 이들이 즐겁게 시청했다. 그렇게 이틀간의 복음영화 상영으로 그 다음 주부터 새롭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분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사비를 털어 벽지로 다니면서 선교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순수 신앙시대였다. 종교도 사람들도 이기적이지 않았던 순수했던 시절, 그때 처음 마이크를 잡았으니 나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엉뚱한 듯 그런 시도를 했던 나 자신도 대견스러웠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일진대 시간이 흐른다고 이렇게 변하나 싶다. 마냥 순수하여 무슨 구경거리 있다하면 즐겁게 모여들고, 영화를 상영 중에 문제가 생겨도 아무 불평 없이 기다려주던 이들, 이젠 그런 느긋한 사람들, 배려 깊은 사람들, 마냥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진정 사람들이 살았던 그 시절, 다시는 복원 불가능한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낙원이었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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