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6- 복숭아 서리하던 날 밤

영광도서 0 775

지금은 큰 범죄지만 그냥 애교로 넘겨주는 때가 있었다. 소위 말하면 서리라 했다. 청년들이 겨울밤에 모여 놀면서 화투를 쳐서 지는 사람을 뽑아 닭서리를 시키곤 했다. 그러면 꼴찌인 두 사람은 어느 집에서든 닭을 훔쳐 와야 했다. 주인한테[ 들키지 않고 닭을 훔치려면 기술이 필요했다. 전문적으로 닭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닭들은 주로 마굿간 천정 기둥에서 잠을 자곤 했다. 소리 없이 잡으려면 몰래 접근해서 우선 닭의 양쪽 날갯죽지를 갑자기 움켜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날개를 푸드덕거리면서 다른 닭들을 날리고 주인한테 꼼짝없이 잡힐 것이 뻔했다.

 

어느 집에서 닭을 훔치는 데 성공하면 일부러 닭을 몰래 해먹을 곳과는 반대쪽으로 가면서 닭털을 뽑아 방향을 속이기가 우선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모여 있는 곳으로 와서 밤새 닭을 잡아 끓여 먹는 것으로 하룻밤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동네에선 그렇게 당하는 집이 하두 집이 아니었다. 우리도 당했는데 우리는 작은형이 우리 닭을 훔쳐간 것이었다. 미리 물색을 못했으니 작은형은 벌로 가장 쉬운 우리 닭을 훔쳐간 것이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은 도둑질을 당해도 그냥 애교로 봐 넘겼다.

 

나는 그런 닭서리를 해본 적은 없었다. 대신에 남의 집 복숭아를 한 자로 딴 적은 있었다. dfl 동네는 워낙 고지가 높은 곳이라 과일이라곤 되는 게 없었다. 돌배나 개복숭아 등이 전부였고 집에서 재배하는 유실수는 재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사과나 자두, 홍도복숭아를 보면 입맛이 당겨서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복숭아 훔치기 원정에 나섰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 4킬로는 떨어진 도관리로 밤에 떠났다. 오일장에 다니면서 보아둔 복숭아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까마득한 가족고개를 내려가 조금은 평평해지는 곳에 있는 집이었다. 한밤중이라 깜깜했다. 그럼에도 워낙 시골에 살다보니 어둠 속에서도 길은 물론 어떤 물체든 구별할 수 있었다. 개가 짖으면 문제이므로 살금살금 셋이서 복숭아나무로 접근했다. 다행히 개는 짖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그 집 바로 앞에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복숭아나무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먹음직한 복숭아들이 손에 잡혔다. 조심스럽게 하나 둘 따기 시작했다. 복숭아 하나 딸 때마다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잔뜩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자루 반쯤 채우는 데 성공하고 무사히 철수했다.

 

고개를 넘어 온 우리는 우리 만 아는 옥수수밭 바위 밑에 자루를 감춰두곤 가끔 지나다 그 안에 들어가 몰래 먹곤 했다. 나쁜 짓이었지만 복숭아 맛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과일이 귀한 때였으니까.

 

주인이 다음 날 복숭아나무를 보곤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엄청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냥 추억이다, 누구나 그랬다’라는 말로 합리화하려 해도 잠 나쁜 짓을 한 것 같다. 그 한 그루 밖에 없는 복숭아를 다 잃은 그 집에선 얼마나 황당했으랴. 얼마나 억을 했으랴. 어쩌면 하루 이틀 상관으로 복숭아를 잃었을 터이니, 진즉에 땄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했으나 나도 살면서 그 보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그때는 죄의식조차 못 느꼈으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고 짓기도 하고 모르고 짓기도 하는 죄가 많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고의든 무의식적이든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종종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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